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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진 개인전 '숲'

서술되지 않는 숲 숲은 ‘어디’가 아니라 ‘어디마다’일 터다. 걸음의 곁이고, 마음의 곁이다. ‘곁’은 무의식적인 가까움이다. ‘곁’은 없거나 멀거나다. 다 마음의 숲이 무성한 탓이다. 길이 가시덤불처럼 얽혀 있는 회색 빛깔의 숲. 유채의 빛은 미로 밖에 있다. 마음은 종종 걸음을 이끌지만, 마음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숲이 정의되지 않듯이, 숲은 서술되지 않는다. 생뚱맞은 생각, 표현 욕구, 확장된 재료..... 망라한 수고로움이 숲과는 무슨 상관인가. 숲은 모방되지 않는다. 나의 서술은 무채의 마음 숲을 가리는 작업이다. 색은 기억해 낸 유채의 빛깔일 따름. 긋고, 칠하고, 뿌리고, 긁어가며 질료와 시간을 안달할 따름. 풀이 우거지면 풀숲, 나무가 울창하면 나무숲이다. 모두 유채의 빛..

카테고리 없음 2022.07.28

일본의 수채화 화단

일본 수채화 화단 일본 수채화 화단은 찰스 워그먼(Charles Wirgman, 1832~1891, 영국)에 의해 그 기반이 마련됐다. 위그먼은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화가로 활동하면서 일본에서 서양미술을 지도한 최초의 외국인이었다. 일본 여성과 결혼(1963, 오자와 가네)했으며, 일본에서 생을 마쳤다. 1857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의 기자로 중국 광둥(廣東)에 파견되어 제2차 아편 전쟁을 취재하다가 1861년 4월, 일본으로 건너왔다. 1862년 거류 외국인들을 위한 일본 최초의 만화잡지 『재팬 펀치』(Japan Punch)를 창간했으며, 1885년(메이지 18년)에는 다양한 풍속과 사건 등을 그린 『일본의 스케치북』(A Sketch Bo..

study 2022.03.10

대한민국 수채화단체 설립 현황

전국 수채화단체 설립 현황 연도 지역 설립 내역 1956 서울 11. 현대수채화협회 창립전(동화화랑) 고화흠(1923~1999 회장), 최덕휴(1922~1998 홍성), 임직순(1921~1996 괴산), 이규호(1920~서울), 이종무(1916~1993 아산), 장리석(1916~2019 평양), 유경채(1920~1995 해주), 이준(1918~2021 남해), 이경희(1925~2019 대구) 등 1964 서울 수채협전 창립전(YMCA 화랑) 고승관, 권오웅, 김광남, 김용길, 박찬훈, 신정무, 류재우, 최쌍중 등 1968 광주 1. 수채화창작가협회 창립전(광주 Y살롱) 배동신(회장), 진양욱(1932~1984 남원), 최쌍중(1944~2005 담양), 박철교(1936~ 광주, 부회장), 강연균(1941~..

study 2022.03.10

수채화, 지방에서의 사색

해방 이전 대구사범 출신 화가들 은 1920년대까지 일제강점기 하에서의 중등미술교육을 도맡았던 국내 3대 사범학교 중 하나였다. 당시 사범학교나 는 모든 이가 선망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교였다. 한국 최고의 근대교육기관이었던 관립 은 1921년, 도립으로 개설됐던 과 은 1929년에 관립으로 재탄생되면서 심상과가 설치되었다. (경북대 사범대 전신)은 전국 각지에서 최고의 수재가 모이는 학교였으며 면내 소학교 전체에서 1, 2등을 해야만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하면 당시 엘리트 직업인 교사직이 보장되는데다 5년간 학비가 전액 면제되기 때문에 빈곤층이 절대다수였던 조선인들의 입학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에서 5년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소학교로 발령 받아 훈도(訓導·현재의 교사)가..

study 2022.03.04

봉화 물야면 행계천 답사

봉화 물야면 행계천 단상 물야면 소재지인 오록리를 빠져나와 우측 산으이(山雲) 마을을 거쳐 사니재와 이애재를 넘으면 두문 동네다. 사니재에서 두룩실로 내려와 우회전하여 이애재를 넘는 게 편한 코스지만, 지금은 사니재에서 곧장 샘골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포장되어 이애재를 넘지 않고 곧장 두문으로 갈 수가 있다. 샘골가는 길은 비포장길일 때는 깊은 산중 길로 접어드는 것 같은 운치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낯선 느낌에 사로잡힌다. 두문(斗文)은 우리말로 말문이라고 하는데, 경주 김씨들이 400여 년 전부터 세거해왔다고 한다. 뱀골이라고 불렸으나 과거 급제자들이 배출되면서 ‘되 글을 배워 말 글로 써먹는다’는 의미로 동네 이름이 두문으로 바뀌었단다. 수식 방향 석시마골 부근을 지나칠 때면 바퀴는 으레 멈출 줄..

story 2022.02.27

수채화, 지방에서의 사색

수채화, 정체성을 지닌 글로벌 회화 수채화(水彩畵, watercolor)란 안료를 수용성접착제와 함께 물에 풀어서 그리는 그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통의 수묵화를 포함, 물이 매제로 사용되는 회화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그 의미를 확장시켜 볼 수도 있지만 오늘날 수채화라고 하는 것은 투명묘법에 의한 작품경향을 일컬으며, 서양화적인 표현기법으로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물을 매제로 삼는 여러 양식들의 독자적인 명칭, 예컨대 불투명화법인 과슈(gouache)나 제지술의 전래 이전 양식인 프레스코(fresco) 등에서처럼 수채화 역시 서양의 특정 회화양식을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동양의 수묵화는 물을 매제로 하는 회화양식임에는 틀림없으나 수채화와는 그 근본정신이 다르다. 수묵화는 기본적으..

study 2022.01.07

영주 최초의 모더니스트, 권진호

영주 최초의 모더니스트, 권진호(1915~1951) ‘대구미술100년전’ 도록을 몇 장 넘기다가 ‘권진호’라는 생소한 작가 앞에 문득 손길이 멈췄다. 출생지 ‘영풍’이라는 글자가 눈길을 확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근대기 영주 출신 작가 한 분과 조우케 된 순간이었다. 당시 ‘영주현대미술50년사’를 전시도록이나 경북예총지 등에 약사(略史)로 발표하며 지역미술사 정리에 매진하고 있던 터라 새로운 광맥을 발견한 듯한 흥분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후 틈틈이 권진호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안동사범 11회 동기회 카페’를 발견하게 됐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이셨던 권오규 선생의 부친이었다는 사실도 확인케 되었다. 카페엔 선생이 그린 수채화들이 소개되어 있었고, 부친 또한 화가였다며 부전자..

artist 2021.08.17

경북화단의 시발점, 손일봉(1907~1985 경주)

경북화단의 시발점, 손일봉(1907~1985 경주) 손일봉은 경주 월성 태생으로, 지방 출신으로는 드물게 1928년 를 졸업했다. 재학시절인 ‘25년~‘28년 사이 선전(鮮展)에 입선 1회, 특선 3회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거두며 미술분야에서도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1928년 졸업 후 부설 보통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자칫 초등교원으로 머물 뻔 했던 손일봉의 재능을 아까워했던 일본인 교장의 추천으로 이듬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다. 1931년 일본여성 미키코(石川幹子)와 결혼을 했으며, 1934년에 동경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중이던 ‘28년~‘31년 사이 일본 제전(帝展)에서도 4회나 입선했다. 졸업하던 해 서울 대택상회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손일봉은 동경으로..

artist 2021.06.11

근원(近園) 김용준(1904~1967 선산)

근원(近園) 김용준(1904~1967 선산) 90년대 초 글쓴이가 모 사립 여중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을 때, 가장 마음이 통했던 분이 국어과 임선생이었다. 임선생은 겸손이 몸에 밴 사람으로, 호 또한 우곡(愚谷)이었다. 늘 책을 가까이했던 임선생은 학교 도서관을 자신의 별장인 냥 아끼고 사랑했다. 공립학교로 나온 지 일 년쯤 되던 해였다. 우곡과 둘만이 스모노 안주에 관한 한 원조를 자부하던 수생집 골방에다 전을 폈다. 얘기가 한창 무르익어가던 도중에 우곡이 슬그머니 일어나 방을 나갔다. 화장실에 가나보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얄궂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불현듯 우곡이 돌아왔다. 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 있었다. 그 사이 몇 백 미터나 떨어진 스쿨서점에 다녀온 거였다. 불쑥 건..

artist 2021.05.20

정주작가와 출신작가들과의 오랜 화음 '영주미술작가회'

정주작가와 출신작가들과의 오랜 화음 ‘영주미술작가회’ 1984년, ‘영주미술동우회’가 창립될 당시의 영주지역의 미술적 분위기는 K의 표현대로 기적소리만 들려올 뿐 언제 도착할지도 모를, 60년대의 기차와 같았다. 김중훈(회장), 신재순, 장홍구, 권용학, 이섭열, 임춘상, 송재진 등 7명의 겁 없는 청춘들이 ‘영주미술동우회’라는 기차를 조립하여 레일 위에 얹었을 때, 그것은 다만 장난감 기차에 불과했다. ‘영주미술동우회’라는 명칭은 이듬해 ‘영주청년미술회’로 개칭되었으며, ‘87년에는 마지막 재학생이었던 김태완(故, 안동대)의 졸업에 발맞추어 ’영주청년작가회‘로 재개칭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영주미술동우회’가 창립된 1984년이야말로 영주지역에 본격적인 성인미술단체라는 출발역이 만들어진 시점이 된..

story 202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