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일본의 수채화 화단

즈음 2022. 3. 10. 15:55

일본 수채화 화단

 

일본 수채화 화단은 찰스 워그먼(Charles Wirgman, 1832~1891, 영국)에 의해 그 기반이 마련됐다. 위그먼은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화가로 활동하면서 일본에서 서양미술을 지도한 최초의 외국인이었다. 일본 여성과 결혼(1963, 오자와 가네)했으며, 일본에서 생을 마쳤다. 1857,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의 기자로 중국 광둥(廣東)에 파견되어 제2차 아편 전쟁을 취재하다가 18614, 일본으로 건너왔다. 1862년 거류 외국인들을 위한 일본 최초의 만화잡지 재팬 펀치(Japan Punch)를 창간했으며, 1885(메이지 18)에는 다양한 풍속과 사건 등을 그린 일본의 스케치북(A Sketch Book of Japan)을 출간하기도 했다. 고세다 요시마츠(五姓田義松),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1828~1894), 고바야시 기요치카(小林淸親) 등에게 서양화 기법을 전수했다.

 

유이치 이후 세대 중 최고 유화가로 아사이 츄(淺井忠 1856~1907)를 꼽는데, 특히 그가 공을 들인 장르가 수채화였다. 츄는 일본의 역사적인 주제나 소재를 작품화하는 데 힘썼다. 이처럼 19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유입된 투명수채화가 일본화단에 뿌리내리게 되면서 융성기를 맞게 되었다. 1905년에는 수채화전문지 미즈에(入及, 월간)가 창간되어 조선 화가들에게도 많은 정보와 영감을 주었다. 수채화에 대한 일본화가들의 관심은 1907년 이후로 점차 영국 수채화에서 프랑스 미술로 옮겨가기 시작했으며, 불투명 수채화의 경향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1913년에는 일본수채화회가 창립됐다.

 

1922년에는 투명과 불투명의 융합을 모색하는 진보적 단체인 창원회가 발족되어 기존 단체와 경쟁관계를 형성하며 수채화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1920년대 중반, 신세대 수채화가 나카니시 토시오(中西利雄)가 불투명수채화를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인성이 도일했던 1931년경에는 불투명수채화가 유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1940년에는 수채화연맹이 결성됐다. 이처럼 일본은 식민지 조선보다 몇 세대나 앞선 19세기 중후반부터 수채화의 발아기가 시작됐으며, 자신들의 습성과 풍토에 맞는 외광파 화풍에다 불투명화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조와 기법들을 꾸준히 체화해 나왔음을 볼 수 있다.

 

 
출처 Charles Wirgman - Alchetron, The Free Social Encyclopedia

 

주)

1) 서성록, 3. 일본의 근대, 근대의 미술, 동서양 미술의 지평, 1999

2) 최은하, 근대 한국수채화의 전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16, 2006

 
 

'stud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수채화단체 설립 현황  (0) 2022.03.10
수채화, 지방에서의 사색  (0) 2022.03.04
수채화, 지방에서의 사색  (0) 2022.01.07
이여성과 이쾌대 형제  (0) 2021.03.05
경북미술사 - '미술동인 경북선'  (0) 202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