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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작가와 출신작가들과의 오랜 화음 '영주미술작가회'

즈음 2021. 5. 15. 11:50

정주작가와 출신작가들과의 오랜 화음 영주미술작가회

 

 

1984, ‘영주미술동우회가 창립될 당시의 영주지역의 미술적 분위기는 K의 표현대로 기적소리만 들려올 뿐 언제 도착할지도 모를, 60년대의 기차와 같았다. 김중훈(회장), 신재순, 장홍구, 권용학, 이섭열, 임춘상, 송재진 등 7명의 겁 없는 청춘들이 영주미술동우회라는 기차를 조립하여 레일 위에 얹었을 때, 그것은 다만 장난감 기차에 불과했다. ‘영주미술동우회라는 명칭은 이듬해 영주청년미술회로 개칭되었으며, ‘87년에는 마지막 재학생이었던 김태완(, 안동대)의 졸업에 발맞추어 영주청년작가회로 재개칭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영주미술동우회가 창립된 1984년이야말로 영주지역에 본격적인 성인미술단체라는 출발역이 만들어진 시점이 된다. 그 장난감 같던 기차가 기적소리를 울린 지 40여년, 여전히 손님들을 갈아 태우며 레일 위의 여행을 계속해나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K는 그 오두막 같던 출발역을 작은 구멍가게에 비유했다. 창립전에 대해서는 마치 작은 구멍가게의 오픈처럼 보였지만, 그들로서는 황폐한 이 조그만 고장에다 자기들 식의 미술사를 쓰고 있었다.”라고. 그러나 80년대의 기관사나 역무원들 대부분이 이십대의 나이로 기차놀이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었고, 마음 급한 친구들은 레일 위를 성큼성큼 걸어가 곧장 소실점이 되곤 했다. 현재에도 정주 회원보다 출향 회원 수가 많은 연유이다.

 

90년대는 지방미술이냐, ‘지역미술이냐를 놓고 수도권 이외의 지역마다 갑론을박하던 때였다. ‘영주청년작가회회원들 역시 적지 않은 딜레마를 겪고 있던 참이었다. 미술평론가 최열은 지방미술과 지역미술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방미술이란 개념은 그 지역의 어떤 풍토, 습관, 생활양식 등에서 비롯되는 독특한 지방색의 표현이다. ... 대체적으로 지방미술이란 개념은 이러한 향토색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어서 그야말로 지방에 거주하는 작가상은 향토작가, 향토의 특성을 구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작가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음이 사실이다. ....지역미술이란 이전의 지방색이나 향토색을 의미하는 지방미술과는 철저히 구분되며 지방미술이란 개념이 풍토와 습관 등에 의존하는 것이었다면 지역미술이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의미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 이러한 개념 정의에 더해, 지방문화(예술)의 열악한 환경은 지역문화가 중앙집권문화의 인적-물적 공급원이고 중앙문화에 대한 열등감만 키워왔으며 지역문화라 해도 대게 중앙문화의 모사-복제품(조홍윤 한양대 교수)”이기도 했던 것이.

 

‘99, ‘오늘의 영주미술 전망전이 개최됐다. 1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이자 제20회 정기전이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영주미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사유와 더불어 영주미술을 전망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출향작가들의 귀향 발언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때 화두로 떠올랐던 것이 바로 지역미술이란 개념정립이었다. 정주작가들만으로는 지방미술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라, 지역 출신의 중견작가들인 김호걸, 이두식 교수를 비롯, 안동지역의 류윤형, 김예순, 영주의 김종한, 김만용, 그 동안 동참은 하지 않았지만 지역 출신 화가들인 양태숙, 금동원, 임종대 등을 초대하였다. 또한 참여작가로 이름을 올린 대구의 권기철, 김부연, 김종언, 박세상, 박천순, 장영중, 정관훈 등으로부터는 참신하고, 진취적인 화풍을 수혈받음으로써 영주미술의 탈지방화를 꾀하고자 했다. 이를 계기로 2002년에는 김호걸, 이두식 교수 두 분을 고문으로 모시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많은 출향작가들이 회원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2000년에 들어, 처음으로 모로갤러리에서 첫 상경전을 가졌다. 당시 재경 동문들의 성원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동문 조영수(영주 중앙고)는 이듬해 서울전을 후원하기로 했고 약속대로 삼정아트스페이스에서 두 번째 전시가 개최되었다. 덕원갤러리에서의 세 번째 전시회는 경비 조달의 한계 때문에 마지막 상경전이 되었다. 처음 서울전시회를 갖게 되었을 때, 회원들은 다음과 같은 선언적 변명을 했었다.

 

미술행태가 학벌이나 지역성 등 분파적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만 문화, 예술의 불모지에서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만들어낸 모임이라면 당위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적, 물적 자원의 절대빈곤 속에서 미술의 다양성을 필연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지금까지 버텨온 우리의 감회는 그러므로 남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점에서 우리 회는 온전한 지역단체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한 지역에 거주하면서 지역미술운동을 주도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소도시들이 앓고 있는 예술의 고임현상과 아집, 무기력 등을 타파해 내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자부하게 된다. 각자의 개성 있는 작업들이 전시공간 안에서 동일목표를 모색하는 단색조의 주장 못지않은, 다양함 속의 어울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공명되고 또 분별되는가를 지켜봐 주길 바랄 뿐이다.’ 라고.

 

영주지역은 출신의 뿌리가 다양하고도 깊은 곳이며, 그들이 해마다 홈커밍하여 지역의 면역력을 증대시켜 온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독특하게 전개되고 있던 영주미술작가회의 특성에 대해 회원 김은주(김은으로 개명)어떤 모임이든 모임이 결성되고, 어떤 행위든 공동으로 그 행위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하나의 의견이나 사상이 있어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그렇다면 영주미술작가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떤 정신적인 뿌리가 잠재해있기에 그들의 이러한 행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라고 묻고 이 작가들의 모임, 그리고 정기적인 전시회는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영주의 문화를 사랑하는 몸짓일 수도 있고, 그들이 꿈꾸고자하는 열망을 부채질했던 특유의 정신문화에 대한 향수를 붙잡아보려는 강렬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자신을 현재의 예술가로 키워낸 영주지역사회를 향해 환원하는 방식으로 미술전시회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 온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다. 예술가는 예술로서, 정치가는 정치로서, 경제인은 경제로서 교육자는 교육의 방법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미덕을 예술가로서 실천할 수 있는 힘은 다름 아닌 영주지역의 선비정신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인다.”라고 자답했다.

 

K는 이러한 영작회의 활동상에 대해 ‘2000년의 우화라는 글을 통해 심경을 드러냈다. “그리고 2000년 봄, 편력과 수업시대를 끝내고 거금을 들여 갤러리에서 상경전을 가졌다. 흡사 한양을 향해 진군하던 동학군을 연상케 하던 21회 서울전시회는 지역미술의 한계를 확인함과 더불어 지역미술을 보는 문화 권력의 외면을 눈뜨고 지켜보아야 했다.” 그랬다. 그러나 사물이나 일에는 이면도 있는 법. 더러는 그 이면에다 윙크를 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전히 기차 바퀴를 굴리고 있는 영작회라는 레일은, 그들만의 인문학적 궤적인 것이고 이제는 글로컬(glocal)’이라는 또 다른 종착역을 상정하기에 이르렀다. 2009, 25주년을 기념한 열린 시각과 소통의 지역미술전에서 영작회맴버들은 또 다음과 같은 선언을 했다.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일 수가 있다. 위치라던가, 행정구역 따위가 출신이라는 낭만적인 의미를 생산해냈다면, 지금은 어느 곳이던 네트워크 상의 그물코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낭만을 즐길 줄 알게 되었으며, 중심의 위치이동을 흔쾌히 도모해 왔다.”라고.

 

이 자위성 강한 발언속에는 지역미술이라는 작의적 코드가 내장되어 있다. ‘지방미술이 아니라 지역미술이라고 당당히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는 지나쳐 나온 간이역들이나, 오르내린 탑승객들 간의 관계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와 함께 하더라도 지금, 여기의 효용성을 극대화시켜야 할 시점에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길이 바로 글로컬이라는 종착역을 상정한 이유였던 것이다. 2003년에는 처음으로 출향작가인 조희섭(10)이 회장을 맡아 서천 둔치에다 대형그림 설치전을 기획하여, 정주작가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가했으며 20042월에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여 회원 간 보다 효율적인 소통의 장을 개척했다. 현재의 명칭인 영주미술작가회로의 개명은 20주년을 맞아 이루어졌다.

 

영주미술작가회가 주관했던 인문학적 활동들이란, 미술강연회와 논단 게재, 전시공간에서의 체험활동, 그리고 꾸준히 소개해 왔던 현대미술 장르 등이다. 특히, 2006년 지역의 무관심 속에 개최되었던 파리-영주미술작가회 교류전은 오히려 개막식에 참석했던 외지 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비록 작품만 전시되긴 했지만, 초대되었던 프랑스 작가 9명 모두 <빵데옹-소르본느대학>이나 국립 조형학부 대학 출신들이어서 격이 달랐다. 이 행사를 맺어준 김은주 역시 <파리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0년 간 파리유학을 통해 맺었던 인연들을 풀어놓았던 것이다. 이는 소도시 사상 손꼽을 사례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역사회와의 교감은 잘 이뤄지지 못했다. 아무래도 임의단체라는 한계가 컸을 수도 있고, 미협이라는 정주세와 작가회라는 출신세간의 단절상황도 한 몫 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역민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낮은 인식도나, 지자체와 언론조차 외면에 가까운 소극적인 입장을 보임으로써 도리어 외부인들의 질타를 불러왔던 것이다. 김은주는 개막행사로 청소년미술교육의 실태(한국-프랑스)’라는 강연과 함께 감상자들을 위한 작품 설명회도 실시했다.

 

2004년 제25회 작품전 지역미술, 자생에서 개방으로전 때는 영주지역 현대미술의 뿌리라 할 계삼정 화백의 작품 1점을 처음으로 지역에 소개했고, 박정수의 한국 구상미술의 과제와 전망’, K(김철옥)의 우리 세대의 영작회’, 정명교의 한국미술에 나타난 야외 깃발전시에 관하여’, 송재진의 영주현대미술 반세기사등의 논단과 에세이를 도록에 실었다. 전시기간 동안 큐레이터 박정수의 누드화로 보는 미술사’, 김은주 회원의 현대미술 속의 철학읽기등 강연회도 릴레이 실시했다.

 

‘0911, 25주년을 맞은 영주미술작가회열린 시각과 소통의 지역미술이라는 타이틀의 기념전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팜플렛도 읽을거리가 있는 자료집으로 엮었고, 전시회 외에도 체험마당과 미술세미나 등을 기획하여 전시 기간 내내 공간을 활용하는 기획력을 발휘했다. 도록 편집은 2단 레이아웃을 통해 위 부분에는 글을, 아래 부분에는 그림을 배치했다. 송재진의 영주현대미술약사’, 박정수의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현황과 전망’, 김철옥의 이발소 그림 속에 숨어있던 밀레’, 김은주의 조형예술의 기능등을 실었다. '알록달록 색채야 놀자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마당으로 이민자 고문이 주도했는데, 원래 하루 동안 시행하려던 것이 뜻밖의 성원에 힘입어 전시기간 내내 실시하게 됐다. 당시 신종 플루의 유행으로 집회나 축제 등이 취소되거나 폐지되는 상황인데다, 날씨마저 궂은 날이 계속되는 등 악재가 겹쳤는데도 불구하고 뜻밖의 성황을 이뤘던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마당은 곧 부모들을 전시장으로 불러들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큐레이터 박정수의 강연 한국 미술시장의 현황과 과제에는 청강인들이 여러 질문을 던지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2012년에는 회장 박정서의 주도로 영주아트파크(영주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100, 대작전을 개최했다. 그러나 시 사회단체보조금이나 도문예진흥기금등 재정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는 임의단체라는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30년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역에다 각종 이벤트를 개최해 왔다는 것은 지역미술의 견인차라는 자부심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2013년에는 인문도시, 미술로 짓다전을 개최했다. <동양대학교> 선비문화연구원이 주최했던 인문학, 세상에 희망을 전하다의 전시 부문을 맡은 것이다. 원래는 주최 측에서 이두식 전을 계획했으나, 이 고문의 급서로 영주미술작가회가 추모전 형식으로 참여하게 됐다.

 

2014, ‘영주미술작가회 30주년 기념전영주문화예술회관 철쭉갤러리 전관과 서울 인사동 <경북갤러리>에서 개최됐다. 서울전은 <경북갤러리>가 정식 개관을 하기 전 특별 대관을 했던 것인데, 대내외에 갤러리를 홍보하게 되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불러왔다. 2015년에는 예천 순수미술작가회와의 교류전을 영주문화예술회관 철쭉갤러리예천청소년문화회관갤러리에서 순회로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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