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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지방에서의 사색

즈음 2022. 3. 4. 12:34

해방 이전 대구사범 출신 화가들

 

 

 <대구사범>1920년대까지 일제강점기 하에서의 중등미술교육을 도맡았던 국내 3대 사범학교 중 하나였다. 당시 사범학교나 <경성제1고보>는 모든 이가 선망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교였다. 한국 최고의 근대교육기관이었던 관립 <경성사범>1921, 도립으로 개설됐던 <평양사범><대구사범>1929년에 관립으로 재탄생되면서 심상과가 설치되었다. <대구사범>(경북대 사범대 전신)은 전국 각지에서 최고의 수재가 모이는 학교였으며 면내 소학교 전체에서 1, 2등을 해야만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하면 당시 엘리트 직업인 교사직이 보장되는데다 5년간 학비가 전액 면제되기 때문에 빈곤층이 절대다수였던 조선인들의 입학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사범>에서 5년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소학교로 발령 받아 훈도(訓導·현재의 교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반에서 40등 안에 들면 매달 관비로 7원씩 나왔다. 7원이면 대략 쌀 반가마니 값이었는데 그 중 식비로 450, 기타 공용으로 2원을 기숙사에 내야했다. 기숙사의 운영은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했다한다. 19434, <경성사범><경성여자사범>은 예과와 본과를 갖춘 전문학교로 승격되었고. 1944년에는 <대구사범><평양사범>도 전문학교가 되었다. 당시 대구지역은 사범학교, 고등보통학교, 농업학교, 상업학교, 공업학교 등 모든 종류의 중등교육기관이 고르게 설립되어 발전해온 보기 드문 지역이었다. 일찍부터 <대구사범학교><대구고보>(1938년 이후 경북중학교)가 세워졌고, <대구농림학교><대구상업학교> 역시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학교였다. 해방 후엔 남한에 있던 10개 사범학교 가운데 본과 과정이 설립되어 있던 <경성사범>, <경성여자사범>, <대구사범>만이 학교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학수준으로 승격되었고, 그 목적과 기능도 초등교원양성에서 중등교원양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구 수채화 화단의 성립에는 서동진(1900~1970 대구)이 1927년 개설한 대구미술사의 역할이 컸으며, 경북 지역은 <대구사범> 출신들이 그 원류를 형성했다. <대구미술사>는 상업미술 전문 가게로 인쇄를 겸업하는 곳이었으며, 이인성(1912~1950)김용조(1916~1944)가 제자로 입사했다. 당시 <대구미술사>는 대구지방 작가, 시인, 화가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서동진은 안으로 <대구미술사>를 통해 국내 화가들을 양성했으며, 밖으로는 대구 주재 일본인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대구의 서양화를 활성화시켰다. 서동진은 이상정(1897~1947 대구)의 제자로 대구에서 두 번째 미술교사기도 했는데 <교남학교>(현 대륜 중고등학교)<계성학교> 양대 사학에 미술교사로 재임했다. 서동진은 1926년부터 약 10년간 무보수로 <교남학교>에 적을 두며 <계성학교>에도 일시(2년간) 근무했는데 그 기간 중에 <대구미술사>도 겸업했던 것이다. <대구사범>은 서동진이 설립한 <대구미술사>보다 2년 늦은 1929년에 관설되어, 미래의 유망주들이 한창 공부하며 선전을 통해 그 싹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로 금경연(1915~1948 영양), 권진호(1915~1951 영주), 김수명(1919-1983 왜관), 강홍철(1918~2011 경산), 최현태(1925~1994 경주), 박재봉 등이다. 박재봉은 대구에서 양화 개인전을 처음으로 가졌던 박명조의 사촌으로 <대구사범> 교사 다카야나기 다네유키(高柳種行)의 제자이며 선전에도 몇 차례 입선했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이주했다가 끝내 귀국하지 못한 불운한 화가였다고 한다. 금경연(4, 1937년 졸업), 김수명(6), 최현태 등은 5년제 심상과 출신들이며, <대구농림학교>를 졸업한 선·후배 사이인 권진호(1936년 수료)와 강홍철(1937년 수료)은 둘 다 <대구사범> 강습과를 수료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재학 중 선전에 입선함으로써 교직과 더불어 작가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이었다. 권진호 역시 학창시절 미술부 활동을 했으며, 졸업반 때 선전에 입선을 함으로써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최현태는 심상과 졸업 후 고향인 경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출발했으나 1948년에 <경주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은 이래 42년간 교직과 화업을 병행해나갔으며, <경주예술학교>를 발족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졸업 이후 경북지역을 벗어났던 작가로는 박봉재(1913~1988 예산)가 있는데, ‘31년과 ‘32년 조선미전 입선과, 동년 全鮮중등학교미술전람회에서 이라는 작품으로 특선에 올랐다. 전선중등학교미술전람회는 19297월경 <경성치과의전문학교> 미술부가 주최하고 경성일보가 후원했던 전람회로 중등부로서는 처음으로 개최된 전람회였다. 심사위원은 현직 일본인 도화교사들로 구성되었으며 전람회는 국내 학생미술전람회로서는 가장 권위 있는 행사였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 전람회에서 입선한 작품 모두 조선미전의 입상작품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박봉재는 <대구사범> 재학 시절 조선미전에 2, 졸업 후 고향에서 1(1934, 13) 입선했던 수재였다. 해방 이후 30년간 생계를 위해 절필했다가 1977년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지면서 화업을 재개했으며, 1980(68)에 국내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때 수채화 100호 대작 등 40점을 출품해 화제를 모았다. 화풍의 가장 큰 특징은 형광색과 파스텔톤의 색감이라고 할 수 있다. 1981년에는 일본화단에서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수채화전에 출품한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으나 외국인에게는 수상하지 않는다는 회의 관례 때문에 수상이 보류되었다는 구두통지를 받은 일도 있다한다. 현재 한국수채화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수채화공모전봉재미술상을 제정해 고인을 기리고 있다.

 

 

 또 전주 출신 김용봉(1912~1994)<전주고보>를 나와 <대구사범>을 졸업한 뒤 전북미술의 밑거름이 된 인물이다. 1949년 국전에 입선했으며. 1937년 이래 1990년까지 전주, 군산, 남원 등지에서 개인전을 13회나 개최했다. 1950녹광회(綠光會)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맡았으며, 1968년에는 한국미협전북지회 지회장을 역임했다. <동래공립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출신으로 이치이 다메지로(一井爲治郞)에게 서양화를 배우고 1930년대 서진달(1908~1947 대구)과 함께 <대구사범>으로 진학했던 이로는 김종필이 꼽힌다. 또 한 사람 북한 화가 한상익(1917~1997 함남 함주)<대구사범> 강습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한상익은 재학 중 겨울방학 때인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1943<동경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이순종, 김정수 등과 조선프롤레타리아미술동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1월 함흥으로 월북하여 <평양미대> 교수와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을 지냈다고 한다.

 

 이처럼 <대구사범학교>는 전국각지에서 수재들이 모여들던 학교였고, 일본인 교사의 지도하에 미술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일선학교 교육자 겸 서양화가로 배출되던 요람이었다. 경북미술(수채화)의 선구자로서 한 맥을 형성했던 <대구사범> 출신들은 경북미술(수채화)의 역사를 1930년대까지 끌어올린 선구자 그룹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금경연과 권진호는 경북북부권에 정주했던 화가들이었지만 둘 다 30대의 나이로 요절하는 비운을 맞으면서, 뒤에 기술될 <경주예술학교> 출신들과의 상면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4, 경북수채화협회(회장 송재진)에서 경북수채화의 뿌리와 맥전을 통해 유작 일부나마 한 자리에 모이게 했던 것이 경북권에서 처음 시도됐던 재평가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권진호&amp;amp;nbsp; '거리 풍경'&amp;amp;nbsp; &amp;amp;nbsp;57x47cm&amp;amp;nbsp; &amp;amp;nbsp;1930&amp;amp;nbsp; &amp;amp;nbsp;대구문화예술회관 소장.&amp;amp;nbsp; 15세 때 그림으로 태극기는 해방 후 가필했음을 알 수 있다.
금경연&amp;amp;nbsp; '여름풍경'&amp;amp;nbsp; &amp;amp;nbsp;44x66.5cm&amp;amp;nbsp; &amp;amp;nbsp;1930년대 (계간미술33 85봄)

주)

1) 안홍선, 식민지시기 중등 실업교육의 성격 연구 : 실업학교 학생 특성과 입학동기 분석을 중심으로, 아시아교육연구162.

2) 尋常이란 보통이란 뜻. 1년제 강습과는 1930~1939년과 1944~1945년 입학자, 6개월제 단기강습과는 1934~1939년 입학자가 해당’-위키백과 대구사범학교 편)

3) 우홍제·안홍선, 근대적 교원양성제도의 변천과 사범대학의 설립, 아시아교육연구74.

4) 허만섭(기자), 신동아2004.9.1 통권 540

5) 대구사범 학과 꼴지인 박정희를....’ 조갑제, 조선pup 2016.4.29

6) 최열, 한국근대미술의 역사-한국미술사사전 1800-1945 p214, 열화당, 2015

7)  윤범모, 수채화의 정착과 대구화단의 형성, 계간미술1981년 가을(19)

8) 최은하, 근대 한국 수채화의 전개, 한국근대미술사학1602006.8.

9) 이중희, 대구의 초기 수채화단 성립과 1930년 향토회 발족배경, 한국근현대미술사학232012 상반기

10) 강홍철(1918~2011): <대구사범> 강습과 졸업. 1956년 중등으로 업그래이드 된 이후 <영남고>, <안동여고>에 근무하다 1961<대구상고>로 전출, 1956년 미공보관화랑에서 첫 개인전 이래 13번의 개인전 개최. 2011년 대구아트페어 대구원로작가특별전에 강우문, 서창환, 신석필, 이경희, 전선택 등과 함께 초대됨.

11) 윤범모, 세잔느에 심취한 누드화가, 계간미술1983년 봄(25)

12) 박유미, 한국 수채화 연구 : , 현대 작가 중심으로, 2006년 경기대 석사논문

13) 하정 김용봉, 이종근의 한국문화 스토리, 2015.7.19

14) 이용길, 부산미술일지(1): 1928~197911, (스마트케이 칼럼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중에서, 황정수 관리자  2017.8.29.

15) 飄逸공간(중국작품전시) https://blog.naver.com/movingspace/120094533635

16) 김영동, 김영동이 본 소봉의 작품세계, 블러그 소봉화랑(2011/06/21)

17) 송재진, 경북수채화의 뿌리와 맥, 경북수채화협회전 도록,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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