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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예향 청도의 근대화단

즈음 2021. 5. 8. 08:41

경북의 예향 청도의 근대화단 

 

 

소싸움청도반시로 유명한 청도는 일찍부터 예향의 면모를 간직해온 지역이다. 경북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192512월과 19261, 두 번에 걸쳐 서화 전람회가 개최됐다. 서화전은 조선시대 동헌(東軒) 건물을 도주학원(道州學院)으로 운영하기 위한 후원 행사라는 기록이 전한다. 192512월에 개최되었던 서화전은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서화가 청파(靑坡) 전형윤(全亨胤 1894~1977)의 도움이 거론되고 있으나, 전형윤 자신의 서화전인지, 후원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체전인지는 분명치 않다. 당시 포항 출신의 서화가 석강 곽석규(郭錫圭)와 지역출신 작가 석농 김우곤이 청도에서 활동했던 사정에 비춰볼 때 이들의 전시회를 후원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19261월의 서화전은 전형윤이 개최했다고 전해진다. 석강은 교남서화연구회와 서화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했던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서화가였으며, 석농 역시 20년대 후반부터 교남서화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25년에 설립된 청도유도회의 창립회원이기도 했으며, 모계학원 초대 상무이사로 육영사업에도 헌신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 부친(김용희)의 호 모계(慕溪)를 따 1947년 모계학원을 설립했던 관재(寬齋) 김경곤도 서화가로 활동했다. 청도 출신 서양화가로는 박일주(1910~1995)와 소운(小雲) 김수곤(1913~1968), 월북화가 박상락(19251978) 등이 꼽힌다. 현대작가로는 재불화가 이배(1956~, 모계중 23)가 숯을 주 재료로 한 회화와 설치작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해방 이후 60년대까지는 소운 김수곤이 청도화단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청도미술사를 이어나왔다. 1957년 청도에 안착한 김수곤은 귀향 첫해인 1957년 첫 개인전을 돌꽃다방에서 열었으며, 1959년에도 두 번째 개인전을 동 장소에서 개최했다. 1968년에는 초등학교 미술담당 교사들이 한국아동미술협회청도군지부를 결성했다. 이들은 서클 회보를 정기적으로 발행했으며, 청도교육청에서도 미술교사들이 순회 특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어린이 화가지망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1972년에는 문곤(1943~2001)<모계고등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해와 청도 출신 미술가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70년대에 청도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했던 이들로는 <청도중학교>의 장인규, <부산사범대학> 미술과 출신의 김종직, 문곤과 함께 <서라벌예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경직, 디자인을 전공한 김동길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구에서의 중·고등학교 시절 미우회’(1958~1961)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후배 사이로 당시 문곤은 <능인고>, 이경직은 <영남고>, 김동길은 <서중학교>에 재학했다. 이들은 교내작품전을 활성화 시켰으며 미대 진학 등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78년에는 청도예술문화연구회가 조직됐다. 1965년 해체된 도주청년회를 계승한다는 취지 아래 1983'도주문화제'를 개창했으며, 학생실기대회도 이 기간에 개최됐다. 1989년에는 청도읍 신도리에 청도목공예전시관이 개관되었고, 1997년에는 한묵회가 창립되어 개별 단체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게 됐다. 1990년대 이래 대구 작가들의 보금자리로 각광받기 시작한 청도는 아뜨리에와 갤러리들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경북 최고의 예술도시로 변모해 나갔다.

 

한국화 분야로는 독학화가 소산(小山) 박대성(1945~)1974년 대만 공작화랑 초대전과 이듬해 대구매일신문사 화랑개관기념 초대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6.25전쟁으로 다섯살 때 부모님과 자신의 왼쪽 손을 잃은 박대성의 인간승리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1976년 일본 오사카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추견으로 장려상을, 이듬해 제2회 중앙미술대전에서는 상림으로 대상을 받음으로써 한국 현대수묵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박대성은 1999"주변이 온통 한국화"라고 했던 경주로 이주해가 천년고도를 수묵으로 완벽하게 재현했으며, 현재 경주 시립 솔거미술관에 주석하고 있다. 박대성이 경주로 떠났을 때, 귀향했던 화가가 민병도(1953~)였다. 민병도는 금천면 신지2리에 자신의 작업실 겸 미술관인 목언예원을 만들어 정착했다. <영남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으나 한국화로 전향했으며,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박일주(1910~1995)

 

박일주의 본명은 박성규(朴性圭) 청도 최초의 서양화가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경성제일고보> 시절 일본인 미술교사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경분카(문화)학원>으로 유학, 1935년 제1회생으로 졸업했다. 작품은 전해지지 않지만 1937년부터 1943년까지 서울에서 시적(詩的)인 표현의 파스텔화 개인전을 수차례 가졌다고 전해진다. 광복 직후 조선조형예술동맹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1935매일신보문화부 기자로 동경에서 파견 근무를 하다 해방년에 귀국했다. 1952년에는 UN군사령부 전속화가로 다시 일본에 체류했다. 1972년 미국 인디애나주의 셀던 스워프 아트 갤러리(Sheldon Swope Art Gallery)에서의 개인전 이후, 1975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체류했다. 이 시기에 박일주(朴一舟)로 개명하고, 1979년 까띠아 그라노프 갤러리(Galerie Katia Granoff)와 평생 계약을 맺고 전속 화가로 활동했으나 1989년 까띠아 그라노프 여사의 사망으로 계약이 중단되었다. 이 시기 일본 전통 칠공예(漆工藝) 그림을 떠올릴 만큼 광택과 장식적 기법의 여인상 연작을 통해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1986년 서울 예총화랑 개인전을 통해 국내에 처음 이름을 알렸으며, 1993년까지 몇 차례 국내전을 가졌다. 1994년 파리에서 영면했으며, 이듬해 유해를 청도에 안장하였다.

 

소운(小雲) 김수곤(1913~1968)

 

김수곤화양읍 백곡리에서 출생했다. 서울 <휘문고보> 재학시절 미술교사 장발(1901~2001)도상봉(1902~1977 함남 홍원)에 의해 1931년경 미술에 입문했다. 고보 졸업 후 1935,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로 유학했다. 이때 주경의 추천으로 백우회(白牛會)’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1938년 졸업 해에 귀국했다. 1945, 주경(朱慶,1905-1979 서울), 박상옥(朴商玉, 1915~1968 서울)이 중심이 된 조선건국위원회주최 해방기념전과 이듬해에는 경북미술연구회에 주경, 김창락(金昌洛 1924~1989 성주) 등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1947<모계중학교> 미술 교사로 부임해 고향 청도에 정착했다. 1951년부터는 <청구대학>(, 영남대)에 출강하며 김수명, 정점식, 박인채(1918~2010 대구), 서창환 등과 교류했다. 1952, <모계중학교> 교장 은퇴 후 경남지역으로 진출해 진해의 <공군사관학교>, 부산, 마산 등지에서 교직 활동을 연장하다 1957년 청도로 다시 귀향했다. 귀향 첫해 제1회 개인전을 돌꽃다방에서 개최했으며, 1959년에도 두 번째 개인전을 동 장소에서 개최했다. 첫 번째 개인전 때는 전시작품들을 청도군과 읍사무소에 기증하였으나, 관리 소홀로 인해 현재까지 소재가 불분명하다. 1963, 대구 <청구대학>에서 개최된 ‘6·3미전에 출품하였고 1965년에는 서울 청운화랑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저서로 김수곤의 소묘집(素描集)을 남겼다.

 

박상락(19251978)

 

박상락<휘문고보> 미술부에서 그림을 배웠다. 졸업 후 부친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홍아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으며, 1943년 북경(北京) 미술전람회에 유화 우인상(20)을 출품해 입상했다. 이를 계기로 미술에 뜻을 두었지만 부친의 반대로 좌절했다가 부친의 장례 이후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청강생 제도가 있었다. 1년을 기한으로 하였는데 원하면 연장할 수도 있었으며 기회가 닿으면 정규학생으로 편입할 수도 있었다. 박상락은 이 제도를 통해 1947,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부 도안과 청강생으로 전문미술교육을 접했다. 한 해 전인 1946년에는 남조선미술동맹에 가입했으며,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의용군(해군)에 가담했다가 월북했다. 북한에서 선전화 창작활동 등으로 1975,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 받았다.

 

 

 

주1) 한국근대미술의 역사-한국미술사사전 1800-1945최열/열화당, p204, 재인용, )서화전람 호황, 동아일보1926.1.8

주2) 디지털청도문화대전, 요약

주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집필자 이구열(1999), 요약.

주4) 김태곤, 「1950년대 대구 학생미술운동의 전개와 성과」, 『옛 화우 반세기 회상전』 팜플렛 2007

주5) 『김생 1300, 초정 권창륜/ 소산 박대성』, 경상북도, 2012 

주6) 장발: 서양화가, 창작보다 미술이론과 교육 분야에 더 많은 관심. 1946년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에 취임. 국무총리 장발의 친동생.

주7) 도상봉: 1920, 1916<보성고보>에서 고희동으로부터 서양화를 배움. 1923,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1927년에 졸업. 이듬해 귀국하여 1930<경신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를 시작으로 <배화여고>, <경기여중> 등에서 교편. 1948<숙명여대> 미술과 교수로 재직. 1949년 국전 창설 시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이 되면서 전업작가로 활동.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역임.

주8) 백우회: 1933년 동경유학생들인 김학준(회장), 주경, 심형구, 김인승, 조병덕, 김원, 이중섭, 이유태,구종서, 이쾌대 등이 결성.

주9)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요약

주10) 조은정,6.25전쟁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2010, p279 S-Space )재인용 서울대학교 4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40년사 1946-1986,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p31

 

석강 곽석규 점경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