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생각의 놀이터
세계적 화상이자 드로잉 콜렉터 얀 크루거는 ‘드로잉은 인간의 첫울음’이라는 다소 자의적이고도 확증적인 말을 했다. ‘유화는 분식할 수 있고, 겹겹이 덧칠할 수도 있고, 다시 그릴 수도 있지만, 드로잉은 눈속임이나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드로잉은 작가의 깊은 내면세계, 원시성과 닮아있다.’라고 드로잉 예찬론을 펼쳤다. 우리나라에도 정신과 의사이자 『화골』의 저자 김동화라는 분이 그런 생각의 동조자이다. ‘작가의 예술적 발상과 창작의지가 담겨 있어 작가의 내면이 가장 잘 드러나며 작가의 진정한 실력은 드로잉에 있다.’고 맞장구를 친다.
과연 드로잉이 그만한 가치와 공감의 지평을 확보하긴 한 것일까. 일단은 개인의 심미안이나 선호심리에 기인한다고 쳐놓자. 그렇지만 드로잉의 가치와 가격이 높이 올라가고 있는 것은 이런 양반들의 혜안(?) 덕분이다.
무희의 화가 드가는 “서로를 바라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인간 아닌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닫힌 마차로는 사람들을 충분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늘 옴니뷔스(합승마차)를 타고 파리 시내를 다닌다고 했다. 인간을 주제로 삼은 화가들의 눈은 늘 열려있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요즘 카메라라는 문명의 이기 덕에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찍은 지인들의 표정과 동작들 중에는 나의 미감을 자극하는, 혹은 찰나를 기록케 할 단서들이 수두룩하다. 거의가 술자리 풍경들이며 화자인 나도 그림 밖에서 그들과 함께 했었다는 방증으로 얽혀든다. 일기가 되는 것이다. 고흐는 말했다. “밤은 낮보다 더 화려한 시간을 갖고 있다.”
소설가 방현석은 이종구의 작품에 대해 “사진으로 남아도 될 사람들을 직접 그리는 작가의 작업은 기록과는 다른 층위에서 기억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는 평을 했다. 이종구는 ‘민중’이라는 시대적 리얼리티를 가장 한국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다. 그에 비해 나의 작업은 소아적이며, 신변잡기적이며, 변방서사적 독백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나의 작업 속에 끌려 들어온 모두가 ‘사진으로 남아도 될 사람들’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왜 자화상을 그릴까. 뒤러처럼 자신을 적극적으로 찾고, 묻고, 자부심을 고양하기 위한 의도를 표출하려는 것도 아니고, 램브란트처럼 자신의 삶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함도 아니다. 고흐와 같은 독백이나 자의식의 발로는 더더욱 아니다.
셀프모델에 의존해야 할 만큼의 궁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물화에 매료되어 필생의 주제로 삼고자 함도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현실을, 순간의 느낌대로 투영해 내고 싶을 뿐이다. 채색을 동원해 작품화한 것은 많이 없지만, 20대 무렵부터 수시로 거울이라는 연못 속에 나를 빠트려놓고 타인인 냥 바라보길 즐겨했다. 무료할 때도 있었고, 치기 같은 걸 주저앉히지 못할 때도 있었다. 느낌의 포착에는 크로키나 스케치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근래 들어 더욱 확고해져 간다. 몇 줄 소감까지 써넣는다. 그게 드로잉을 즐기는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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