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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비홍수(綠肥紅瘦), 이인성의 ‘해당화’

즈음 2020. 7. 3. 09:43

해당화 캔버스에 유채 228x146cm 1944 호암미술관 소장

술을 남자처럼 사랑했다는 송나라 때의 여류사인(詞人) 이청조가 지은 여몽령(如夢令)’ 구절 중에 녹비홍수(綠肥紅瘦)’라는 표현이 나온다. 간밤에 내린 비에 잎은 무성하지만 꽃은 야위었을 거라는 뜻이다. 신록이 녹음으로 옮겨가는 계절의 변화 앞에 청춘의 쇠락을 예감하는 섬세함을 읽을 수 있다. 여몽령이란 악보의 명칭이며 서정적인 운문에다 운율을 더한 노래를 일컫는다. 사를 음미하는 동안 저절로 그림이 그려진다. ‘옛말에 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라고 했다. 하지만 녹비홍수의 어감 속에서는 소리마저 응축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된다. 여몽령의 전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어젯밤 비는 성기고 바람은 세찼지 (昨夜雨疏風驟)

푹 잤는데도 술기운은 가시지 않아 (濃睡不消殘酒)

발을 걷는 시녀에게 물어보니 (試問捲簾人)

해당화는 아무 일 없다 하네 (却道海棠依舊)

그럴 리가, 그럴 리가 (知否知否)

잎사귀는 무성해보일지라도 꽃은 줄어들었을 것인데 (應是綠肥紅瘦)

 

당시 송대의 모든 사에는 악보가 있었는데 이를 사패(詞牌)’라 불렀다. 복잡하고 엄격한 규율을 가진 율시(律詩)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사는 민초들이 새롭게 개척한 서정시이자 노래였던 것이다. 사는 시에 비해 서민의 성격이 강하고, 감정의 표현 또한 노골적이다. 또한 5, 7자로 규격화된 구()의 형식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오늘날 자유시나 유행가 가사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해당화’(1944, 캔버스에 유채, 228.5x146cm) 라는 제목의 유화가 있다. 바로 천재’, ‘한국의 고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대구 출신의 화가 이인성의 작품이다. 초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진, 거의 독학으로 자신의 화풍을 일구어 한국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수놓은 작가.

 

이인성은 일제에 의해 개설된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를 통틀어 최다, 최상의 수상 실적을 이룩했던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인재였다. ‘해당화1944년 작으로 일제의 막바지 발악이 극을 향해 치닫던 시기에 그렸던 그림이다. 이인성의 작품 중 대작에 속하는 이 작품엔 내재적 상징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어두운 하늘과 무심한 표정의 인물들은 비록 녹비홍수일망정 해당화는 결코 다 지지 않을 것임을 은유하는 듯하다. 어둡고 칙칙한 바다와 하늘,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여인과 제각각 포즈를 취한 소녀들의 표정은 어두워 보이지만 이와 달리 땅은 밝고 따뜻한 색채로 채워져 있다. 한 치도 알 수 없는 광기의 시절이었지만, 희망마저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이다. 이인성은 회화는 사진적이 아니며 화가의 미의식을 재현시킨 별세계라고 읊었다. 화가의 미의식엔 온갖 감정들과 염원들이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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