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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은 길을 묻지 않네 6

즈음 2020. 5. 28. 17:33

125 목로

 

 

125이리오시오라는 뜻이다. 목로는 영주중학교 통로 사거리 부근에 위치했다. K의 표현대로 80년대 우리들의 양산박 홍도식당을 닮은 집이다. 오랜만에 발걸음을 했던 어느 날, 우피무침 접시만 보고도 맛을 알아차렸다. 욕쟁이 주모의 부재 때문인지는 몰라도, 맛은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할멈의 손맛이 부재하다는 것은 이백이 탄식했던, 술 잘 빚던 기노인의 부재와 다를 바 없다.

 

저승의 주막집/ 이백

 

() 할아버지께서는 황천에서도

여전히 맛있는 술 빚고 계시리라

그러나 무덤 속 저승에 이백은 없으니

그 술을 누구에게 파시려는지?

 

哭宣城善釀紀叟

 

紀叟黃泉裏 還應釀老春 夜臺無李白 沽酒與何人

 

끝순네를 찾아낸 것이 나였다면, 125목로의 발견자는 K였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골동취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만 욕쟁이 주모의 여운만은 지금껏 남아 맴돌고 있다. 기노인은 술을 잘 빚었지만, 목로의 주인할멈은 안주를 잘 빚었다. 그 중에서도 우피무침안주는 다시는 맛 볼 길 없을 듯하여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맛까지 더불어 그립게 만들었다. 125목로를 떠올릴 때면, 술이 주연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주객이 전도된 듯 막걸리는 매운맛을 무마시키기 위한 존재로 전락했던 것이다. 그 맛은 LP레코드판의 트랙을 도는 바늘처럼 입안을 기스냈지만, 한편으론 아날로그적 맛의 낭만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손맛처럼 맵고 아린 그리움이었다. 홍어회와 막걸리를 홍탁이라 하듯 우피무침과 막걸리를 나는 피탁이라고 불렀다. 잊히었던 먹거리 하나를 125목로에서 되찾은 것은 행운이었다.

 

125목로는 촌로들이나 동네 술꾼들의 사랑방이었다. 맨 처음 K와 만나기로 했던 날, 목로는 드러내놓고 숨어있었다. 근처에 도착해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게만 만들 뿐 쉬이 문손잡이를 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농기계수리점이라는 낡은 간판으로 위장(?)해 놓은 것도 모자라 툭 튀어나온 건물의 이마만큼이나 안쪽에다 출입구를 들여 놓고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입맛 당길 때마다 이 목로에서 죽치며 삐질삐질 땀을 훔쳤다. 우리와 같은 부류들도 차츰 늘어만 갔다. 가끔씩은 원단골들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이 솟구치기도 했다. 우리야 안주 값을 아끼지 않던 유한(?) 손들이었지만 원래의 단골들은 그러지를 못했던 것이다. 늘 혼자서 김치쪼가리로만 막걸리를 마시던 초로의 한 사내가 우리 자리에 껌딱지처럼 붙게 된 일도, 따지고 보면 미안한 감정이 자초했던 일이기도 했다. 우연찮게 옆자리에 자리한 그에게 안주를 권한 것이 사건의 단초였다. 그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로 옮아왔다. 이후부터는 아는 체를 넘어 둘만의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참견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갔다. 우리는 표정만 굳어졌을 뿐, 야박하게 내치지는 못하고 끌려가기가 일쑤였다. 어느 날, 힐끗힐끗 살피기만 하던 주인 할멈이 불각지에 우리 자리를 덮쳤다. 초로의 사내는 멱살을 잡혔고 순식간에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만류를 해보려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눈치도 없는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다시는 얼씬도 마라, 이 못된 영감탱이!” 멀어져가는 사내의 등뒤로 욕설이 파편처럼 튀었다. 그러고서는 우리를 돌아보며 씩 한 번 웃어주는 게 아닌가. 어처구니없기도 하면서 우습기도 하고, 송구스럽기까지 하여 남은 술을 비우는 내내 우리는 말문을 닫았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흑백사진 위로 불콰한 색감이 번져나는 것만 같다.

 

고인이 된 주인할멈이 우연히 화제에 오른 날, 서각 시인이 자신의 일화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변순사라는 친구와 우피무침을 시켜놓고 각 1병씩만 마시자고 약속부터 했다나. 이제는 건강을 생각할 나이도 됐고 하니 지금부터는 더 마시자고 하는 사람이 개다! 그러나 소주병은 밑이 새는 듯 했고, 금세 서로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잠시 적막감이 흘렀을까, 멍멍 하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변순사의 입을 통해서였다. 이번에는 꽁치 안주를 시켜선 술잔을 들 때마다 멍멍, 멍멍하며 마셨다. 파장 무렵, 자취를 했던 변순사가 내일 아침반찬을 하겠다며 남은 꽁치 1마리를 싸달라고 했단다. 주인할멈 왈, ‘개 줄라꼬요?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