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흐르는 물은 길을 묻지 않네 8

즈음 2020. 6. 2. 19:34

화동(火童) 스케치

 

 

불장난하는 아이지만, 스스로 불 끄며 놀 줄 안다. 저자에 불질러놓고 돌아와선 제 그림 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불장난을 멈추지 않으면서 불내지 않으니 생각할수록 저절로 웃음이 배어난다. 수묵담채라는 재료도 그렇고, 화제 또한 냇가나 폭포수가 대부분이다. 화동 형은 80년대 초 지역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며 한국화라는 장르를 불붙게 한 사람이다. 거리낌 없는 언행에다 기행을 일삼는 작가 기질은 조용하기만 하던 지역 미술계에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90년대 후반에는 끝순네가 등장하여 동네 예인들에게 멍석을 깔아줬다. 객기와 치기로 무장한 수염족과 뻐꾸기들 중에서도 화동 형은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그의 친구 맺기는 20여 년 연상의 나이조차 거리낌 없이 끌어내리는 수완이 있었다. 형의 일탈은 일종의 선망이었고, 재미를 동시에 선사해 주었다.

 

쪼바이 쪼르스키 쪼르테 악산에 돛대 사키사키 도조 마이마이 드링크 쥐박자!”이는 형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건배 선창 구호이다.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E마이너라고 우기며 저음의 키로 노래를 읆조리고, “사람살려!” 추임새로 마무리를 짓는다. 흰 수염 때문에 그야말로 애늙은이의 모습. 수염을 깎는다면 10년은 젊게 보일 상이라 했더니, 지금까지 머리와 수염 손질을 스스로 해왔다는 자부심으로 우회해버린다.

 

오래전, 끝순네서 지인의 시를 읊어주며 좌중의 분위기를 확 휘어잡던 때가 생각났다. 동네문인들의 입장으로선 자신의 시를 낭송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한 하늘 아래에서의 뿌듯함일 것이다. 물위를 헤엄치는 오리의 여유로움은 물 밑에서의 바쁜 발놀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화동 형 역시 시의 체화를 위해 남모를 애를 써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즉흥적 소란은 준비된 소란이었으며 이것은 크나큰 배려심의 소산이었다. 대중적 시 한 수 암송키도 버거운데, 하물며 지인의 시를 그것도 적시적소에 응용해 내는 맛이란 극적이고 신화적일 수밖에 없다. 형의 목청에 실린 적 있는 동네 시인들 역시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전국구급 시인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중 술맛을 부추기는 이 한 수는 형 덕택에 꽤 유명한 시로 회자되기도 했다.

 

갈매기

 

갈매기는 지쳐서

파도에 눕고

파도가 지치면

모래에 눕는데

나는 오늘 지쳐서

소주에 눕네

 

한때 K는 이 시를 서각 시인의 작품으로 오인한 적이 있지만, 이 시의 주인은 최대봉 형이다. 대봉 형이 서각 시인과 주문진에 놀러갔을 때 바닷가에서 지은 즉흥시란다. 서각 시인은 소심형이라 여행을 떠나도 1박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던 걸 보면 당일치기라 아쉬움이 남은 것 같다. 75세까지는 살아남아 삶을 드러내겠지만 이후에는 존재를 감추고 싶다던 대봉 형. 독립영화 한 편과 시집 한 권 내는 게 꿈이란다. 섬 여행(그동안 스물 몇 군데나 다녔다고 한다), 정한 섬 여행이란 마지막 배가 떠난 뒤부터라고. 그 절대고독!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