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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미술기행54 김판국

즈음 2016. 8. 10. 15:31

영주미술기행54

 

네 칸 만화인생 50, 언론인 김판국 화백

 

 

김판국 화백께 전화를 드렸다. 지역 미술계에 종사하는 고등학교 후배며 현재 영주시민신문에 지역출신 미술인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화백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활기찼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대뜸, 자신보다 먼저 소개해야 할 분이 있다고 했다. 그 분이 바로 지난 호에 소개했던 권영섭 화백이다. 지역출신으로 널리 알려진 만화가가 세 분씩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망외의 소득임에 틀림없다. 글쓴이의 만화예술로의 여행은 이렇듯 김화백으로부터 시작됐다 


만화가는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에서 화가의 시선과는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학창시절, 친구인 류윤형 화백의 풍경화에 대해 그림이 잘 못되었다는 평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숲 속에는 온갖 곤충들과 새들이 살고 있고, 물속에는 다양한 물고기 떼들이 놀고 있으며, 길 위에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일 터인데 어찌 맹탕 겉모습만 그렸느냐, 그러니 잘 못된 그림이 아니냐. 이처럼 만화가는, 보이지 않거나 생략해도 무방할 대상에 대해서까지 투명한 관찰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한다. 정보에 대한 분석력뿐만 아니라 상징과 복선, 해학을 아우르는 감수성을 지녀야만 되는 것이 바로 만화가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김판국 화백은 의성군 출신으로 대구, 영월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이 돌아가신 초등학교 6학년 때 외가가 있는 영주로 이사를 와 영광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어릴 때부터 그림 소질을 드러냈던 김화백은 가난한 집안 탓으로 쉽게 그릴 수 있는 만화에 자신의 소질을 의탁했다. 국회의원 김창근씨 부친이 운영하던 영남일보지국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당시 네 칸 만화 문고리에 심취했다. 김화백은 고등학교 졸업 1년 뒤인 1966년 군에 입대, 장교로 근무하며 10년간 전우신문에 만화를 기고했다. 마침내 그에게도 인생의 갈림길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직업군인의 길을 계속 갈 것이냐,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만화가라는 새 길을 선택할 것이냐. 1974년 스물아홉 나이, 마침내 그는 경향신문에 선발됐다. 이후 20년간이나 시사만화 청개구리는 경향의 아이콘으로 명성을 잇게 된다 

 

김화백이 입사했을 당시의 경향신문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MBC와 강제 합병되어진, 반독재 야당지로서의 명성이 지워져 있던 시절이었다. 본인은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고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고 했지만, 그의 만화 제목인 청개구리가 저항을 상징하는 말임은 부인하기가 어렵다. 실제로도 경향신문(‘80.8.14)에 발표했던 시사만화 색안경이 신군부에 의해 불가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그 이전의 네 컷 만화의 논조와는 달리 온순하고 얌전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김화백은 경향 입사 전 MBC 코미디언 공채에 응시하여 1차 합격을 받기도 했다. 심사위원이 물었다. 그대는 탈렌트의 비주얼인데 왜 코미디언에 지원했는가. 특기는 무엇인가. 대답했다. 특기는 없고, 단지 1기라는 점 때문에 지원했다. 회사에서 키워줄 것이 아닌가. 결국 떨어지긴 했지만, 경향신문에 입사한 뒤 시사만화가라는 점과 장교출신(대위)이라는 점, 코미디언 응시로 인한 눈도장이 찍혀있었던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유쾌한 청백전과 같은 많은 TV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김화백은 경향신문사 근무 시절,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제일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해주세요. 1995, 김화백은 농민신문으로 직장을 옮겨 이번에는 네 컷 만화 하나로를 연재했다. 2016년 현재까지 두 신문사에서만 43년을 근속했으니 하나님께서 김화백의 기도를 들어주었음이다. 그밖에도 민족의학신문에 미래로원장, 광진구청과는 20대국회의원선거홍보만화 MOU를 체결하는 등 10여 곳이 넘는 매체에 만화를 기고하고 있다. 특히 영주의 각종 매체에도 작품을 보내주어 낯이 익다. 농민신문사에서 만나 뵌 김화백은 동안이었다. 매사에 긍정적이며, 솔직함이 돋보였다. 그는 상대방에게 말을 이렇게 바꾸어 쓴다고 했다. “고민 좀 하세요대신 생각해 보세요” “수고하세요대신 애쓰셨어요또는 좋은 날 되세요라고.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김화백. 자신의 생활신조처럼 신바람 나게 살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건강해 보였다.



                                                               

                                                                       농민신문 2016.8.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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