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영주미술기행39 장호중

즈음 2016. 4. 6. 08:45

영주미술기행39
 
지필처럼 부드러움을 간직한, 한글서예가 백전(栢田) 장호중


 
지역의 예술 행사 때마다 카메라 앵글로 스토리를 써나가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서예가 백전 장호중이다. 영주미협의 부회장이기도 한 백전은 자발적으로 행사기록을 도맡더니, 급기야는 지역예술계 전반으로 영상기록자로서의 사명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대수묵화의 대가 서세옥 화백은 지필을 다른 말로 '유한(柔翰)'이라고 했다. 재료가 부드럽다는 뜻이다. 장호중의 성품 또한 유한을 닮았으니, 봉사하는 마음도 거기에서 비롯되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지필묵에 동화된 삶을 살아온 것도 그러한 생리적 끌림에 연유 됐으리라. 백전은 한글서예 분야의 선구자로서 이미 우뚝한 작가이다. 그의 글씨는 단아하고 정돈되어 절로 기품이 흐른다. 2004년 제6회 '대한민국한글서예대전'(월간서예 주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까지 역임했다. 주 종목을 한글로 삼은 탓에 그가 한문 서예에 관해서는 관심 밖인 줄로 오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백전은 안동대학교 한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한국한문학전공)을 수료한 학예를 겸비한 작가이다. 각종 서예대전의 심사위원 위촉 시 한문 입상작들의 오·탈자를 최종 검수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백전이 붓을 잠시 멀리하고 대학원에서 학문에 정진했던 것은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붓글씨는 학문적 내실이 담겨야한다.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것 같지만, 생각이 먼저다.” 그의 스승은 삼여재(三餘齋) 김태균 선생이다. 
 
백전이라는 호는 자신이 태어난 예천의 백전리에서 따온 것이다. 잣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세한(歲寒)'의 소재가 된 나무이다. 지명을 취했다는 소박함보다도 변함없이 굳건한 나무의 이미지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오래 지니게 된 이름은 그 사람의 이미지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백전이 바로 그런 이름일 것이다. 그는 영주고등학교 3회 졸업생으로 현재 모교에서 30여 년 봉직 중이다. 백전은 2011년 제30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초대작가로 거듭났다. 그때 받은 상금 전액을 모교에 기탁했다. 2002년 '새천년한국서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때도 상금 3백만원 전액을 기탁했던 선례를 남겼다. '유한'의 성품과 '백(栢)'의 기상이 어우러진 그만의 미담이 아닐 수 없다. 과정 김동진이 먹과 벼루와 같은 단단함으로 결기서린 선비를 떠올리게 한다면, 백전은 종이와 붓 같은 유한을 닮은 선비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후배 사이지만 둘 다 삼여재 김태균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들이니 나름대로 비교를 해 본 것이다. 과정의 결기는 예인적 기질을 돋보이게 하지만, 백전의 유한은 자적하는 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 말하자면, 서예인으로서의 백전은 온고지향적이며, 정형을 고수하는 보수적 성향이 짙다는 말이다. 이는 그가 지향하는 서체, 즉 궁서체에서 기인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글 서예의 기본은 궁체다. 한글 창제 이후, 궁인들이 지금의 글씨체로 변모· 발전시켜나온 것이 바로 궁서체인 것이다. 남성적인 판본체에서 부드러운 여성체로의 전이는 필연처럼 느껴진다.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자부하는 한글은 조선의 지식인들로부터는 '언문' 박대를 받았고. 한문중심의 서예 제도를 내세운 일제강점기 때는 한글이 고사될 뻔한 암흑기를 맞기도 했다. 해방 후 지금까지도 한문 중심의 서예풍토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한글서예만을 고집하며, 궁서체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갈물 이철경(1914~1989)과 같은 선각자도 존재하는 법. 1958년에 결성된 '갈물한글서회'는 오로지 궁체만을 고집한다. 백전의 고집 역시 이러한 물줄기에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서예인들이 자신의 서체를 개발하고, 응용분야인 캘리그라프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시대에 원칙과 전통을 사수한다는 일은 일면 고지식하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기초가 부실한 응용분야들이 일찍 한계를 드러내고 도태되는 현상을 수없이 보아왔질 않은가. 그러고 보니, 백전의 글씨의 선이 더욱 곧고 단정해보인다. 초성과 중성, 중성에서 종성으로 이어지는 연사(連絲)의 유연함이 실로 감미롭다.   
 

 

2011 대한민국서예대전 우수상 수상작


남으로 창을 내겠소



 

























'art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주미술기행40 신재순  (0) 2016.04.18
영주미술기행48 손봉숙  (0) 2016.04.10
영주미술기행42 김철옥  (0) 2016.04.02
영주미술기행38 박세상  (0) 2016.03.28
영주미술기행41 강형수  (0) 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