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미술기행38
세상 밖으로 다시 말문을 튼 화가 박세상
박세상. 여전히, 함께 했던 세상이었다. 근 20여년 만에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형순’에서 ‘세상’으로, ‘그림’에서 ‘꽃’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직업이 바뀌었다. 그런 풍문을 스쳐듣기만 했던 세월이었다. ‘형상언어’에 관한한 그는 달변가였다. 그런 그가 언젠가부터 스스로 말문을 닫고, 바람의 소문마저 잠재워버렸다. 화가 박세상. 2015년, 그가 10여년 만에 다시 말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동안 ‘고독’을 정진했다고 들었다. 말문을 텃다는 것은 그 고독을 ‘내 것’으로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그는 비로소 내면의 참 풍경과 맞닥뜨렸다. 손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경계란 애초에 없었다. 어디에도 문은 없었지만, 열면 열리는 것이었다. 박세상은 그렇게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림은 그림자의 줄임말이라고 했다. ‘그림자’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사유는 깊고 오래됐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다. ‘무대 위에 나와서 뽐내며 걷고 안달하며 시간을 보내다 사라지는 서툰 배우’라는 것이다. 전자는 시 제목이요, 후자는 시의 한 구절이다. 화가의 사유는 보다 화두적이다. 현대수묵의 대가 서세옥 화백은 ‘그림자는 무엇이든 흉내를 낸다. 따라서 모든 만유는 그림자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둠 속에는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그림자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둠 속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는 항상 무대 밑 어두운 곳에서 자기를 감추고 화려한 조명 속에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그림자들의 향연을 지켜보아야한다는 것’이다. 박세상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기도 했고, 숨어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나 그림들이 한낱 그림자의 춤사위였음을 이미 체득했다. 그의 근작들을 보는 순간 글쓴이의 느낌을 신뢰하게 됐다. 정형과 비정형, 구상과 추상, 평면과 입체. 이러한 이분법들은 마음의 경계였지, 작가에게는 원래 존재하지 않던 문이었다. 박세상은 1960년 생으로 영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영주 임무소에 근무했던 부친은 그의 재능을 알차채고 영주에서 유일하게 중·고 시절부터 ‘유화’를 그리게 했다. 당시 유회구를 접한다는 일은 또래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영주고를 졸업하고, ‘80년 안동대학교에 진학했다. 출중한 외모에다 빼어난 실력을 겸비하여 동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음은 당연지사다. ‘81년 영주출신 미술과 학생동아리인 ’모서리‘회를 창립했을 때 회명을 지은 것도 그였다. 영주고등학교 1년 선배인 김철옥은 세상을 좋아했다. 그건 박세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첫 개인전(1991, 대구)을 열었을 때 에필로그를 철옥에게 부탁했고, 철옥은 독특한 취향의 토막글 단상을 그에게 보냈다.
‘사람력(歷) 31년 7월 어느날 철옥’, 으로 시작되는 글 속에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어렸을 적에 스승에게 물었다.「선(禪)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침묵 속에서 면벽을 계속하고 계실 뿐이었다.’ 프롤로그를 써주었던 스승 이수창 교수는 박세상에게 이렇게 물었다. ‘서울생활을 왜 버렸느냐’ ‘체질에 안맞습니다’ 세상은 대구에 정착했다. 구상미술의 메카인 대구에서 그는 정예작가군에 포함됐다. 각종 공모전에서 금상, 특선을 획득하고, 국내·외 기획전에도 여러 차례 초대됐다. 그랬던 그가 스스로 모든 걸 잠궈버렸다. 어느 날 자신의 작업에 회의가 찾아왔다고 했다. 개인사의 갈등과 큰 사고로 인한 육체적 고통도 뒤따랐다. 그는 철옥이 물었던 스승의 침묵을 자신의 것으로 치환해버렸다. 10여 년의 면벽의 끝 무렵, ‘고독’ 속에서 자신을 향한 '할'이 일었다. 마침내 '심우도'를 완성해갈 청사진을 펼쳤다. 그것이 바로 2015년 7월, 수성아트피아에서 개최한 '고독'을 주제로 한 작품전이었던 것이다. 그 이전의 10년을 더 보탠 뒤에야 글쓴이 역시 그에게 ‘말걸기’를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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