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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미술기행43
뿌리깊은 인사동 '나무' 독립전시기획가 김진하
굵은 터치와 겹칠하기 기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다가 물덤벙 같은 투명기법을 구사하는 친구와 조우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진하가 그린, 물빛이 투영된 듯한 흰 항아리의 질감이 본받고 싶을 만큼 새로웠다. 본인은 정작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정물화 한 점은 지금까지도 묘한 감동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광중학교를 졸업하고 영광고로 진학했던 글쓴이는 심길남 선생의 환영을 받고 곧바로 휴천동 화실로 직행했다. 당시 한 명뿐이었던 화실생은 영주고 3학년인 이영박 형이었는데 글쓴이가 합류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화실로 옮겨갔다. 우리 화실도 하망동 대동한의원 맞은편으로 이전하면서 남여 고등학생들이 많이 입실하게 되었고, 진하도 그때 들어왔던 걸로 기억한다. 영주중 시절엔 미술부 활동을 했다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그림 쪽에 뜻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서울로 전학을 가기까지 화우로서 짧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한 동안 여운으로 남아있던 친구였다.
진하는 봉화 옥방에서 태어났다. 영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영광고등학교 2학년 때 휘문고로 전학을 갔다. 서울대를 지망했던 진하는 '80년, 재수 끝에 홍익대로 방향을 틀었다. 서양화를 전공하며 목판화에 심취했다. 당시 민중미술을 상징했던 목판화 양식이 진하에게도 최적의 쟝르로 다가왔다. 10·26 사태와 신군부의 등장 등 8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은 진하에게 진보적인 미술학도의 길을 걷게 만들었던 것이다. 졸업 후 어느 날, 그는 화가의 붓을 버리고 이론가로서의 붓을 바꿔 들었다. 타고난 글솜씨가 그의 변신을 뒷받침했다. '84년 <한강미술관>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88년부터는 <한선갤러리>에서 일을 했다. '나무'라는 이름이 진하의 상징이 된 것은 '89년부터 '99년까지' 나무기획'과 대안공간<나무화랑> 기획실장으로 활동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에 갈 적마다 들리곤 했던 글쓴이는 2000년대 이후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을 달리해서인지 서서히 그를 잊어갔다. 십 수 년의 세월이 지났을 무렵, '영주미술작가회'의 이민자 고문께서 진하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뚯밖이었다. 진하의 장모님이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최초로 졸업했던 여류화가 문은희씨며 친한 선배라는 것이었다.
'나무'는 90년대 이후 진하의 브랜드이자, 아이덴티티(정체성)로 자리 잡은 명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사동에 뿌리내린 지도 벌써 30년 세월을 바라본다. 4층까지 걸음의 수고를 감내해야만 닿을 수 있는 갤러리엔 시대와 불협하는 작가들의 작품전이 늘 개최되고 있다. 얼마 전 재미있는 기사를 읽고, <나무갤러리>에 들렸다. 1987년 진하와 이섭 두 작가가 제작했던 아트 포스터 ‘전환의 사(史)’가 <서울 옥션> 경매에서 수 백 만원에 낙찰됐다는 기사였다. ‘전환의 사’는 한국 근·현대사에 등장했던 인물 30명을 새긴 4절 크기의 목판화이다. 미술시장에 대중화된 판화를 선보이겠다는 의욕 하나로, 직접 목판을 새기고 초배지에 1,000장을 인쇄해 한강미술관에서 1,000원씩에 팔았던 젊은 날의 추억이기도 했다. 제작비도 건지지 못했던 그 작품들이 30여년이 지난 지금, 경매를 통해 500배가 넘는 금액으로 낙찰이 되는가 하면, 이 작품을 구하고 싶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목판화를 대중들과 소통하며, 사랑받는 쟝르로 이해시키기 위해 애썼던 지난날이 새삼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나 역시 젊은 날의 그의 목판화 몇 점을 간직하고 있다.
근래의 만남 때 진하의 역작 '나무거울'(우리미술연구소 품 2007)을 무상으로 증정 받았기로 점심을 내겠다고 했다. 빛바랜 시간을 품고 있는 이문설렁탕집 또한 오래된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거울' 엔 출판미술로 본 한국 근·현대 목판화, 1883-2007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가장 한국적인 판화형식인 목판화에 관한한 총정리를 해두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두툼한 두께의 책은 벽에 걸어놓은 거울처럼, 책꽂이 안에서도 눈길을 잡아끈다. 젊은 시절, 진하는 탁월한 기획력을 발휘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96년, '아트컨설팅 서울' 연구위원으로 서울시에서 지명 공모한 '도시와 영상전'이 1등으로 당선되었는가 하면, 이듬해엔 '제1회 서울 국제도예비엔날레' 기획안 역시 1등으로 당선되는 역량을 발휘했다. 그 동안 약 70회의 굵직한 전시기획을 성공시켰으며, '나무거울'외에도 현대미술에 관한 많은 평론과 책을 썼다. 현재 <나무갤러리> 안에 '우리미술연구소 품'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목판화 전문가로서, 현대미술 평론가로서 인사동의 뿌리 깊은 '나무'임에 틀림없다. 아니, 그늘 넓은 '고목'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전환의 사(史)' 목판 45x56cm 1987 김진하 이섭 작. 작품사진 나무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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