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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미술기행20 김은

즈음 2015. 11. 25. 10:54

영주미술기행20

 

진심을 담는 퍼포머, 현대미술가 김은

 

연락이 뜸했던 작가로부터, 어느 날 팜플렛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바닷가에서 소복을 입은 채 거닐고 있었다. 그 침묵의 몸짓을 보며 문득, 세월호를 떠올렸다. 그곳은 진도의 팽목항 서망해안이었다. 그녀를 감싼 천 개의 바람, 만 개의 물결이 그녀의 치맛자락에 끌리고 있었다. 그 다음 장면은 더 큰 충격이었다. 스님이 삭발을 하고, 삭발한 머리카락을 태워 그 재를 바다 위에 뿌리는 장면. 무엇이 그녀를 그 어둡고 차가운 바다로 이끌었을까. 너무나 슬퍼서 아름답기까지 한, 예술을 씻김굿으로 승화시킨 퍼포먼스이자 그녀만의 개인전이었다. 2015416일의 일이다.

 

김은은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1994년 프랑스로 유학을 가 현대미술로 방향을 틀었다. 1995년 프랑스 체류 중,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예술교육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다. 1997년 파리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를 받고, 2003년에는 동 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를 취득했다. 조형예술이란, 현대미술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녀는 2006년 영주미술작가회에서 주최했던 세미나에서 청소년 미술교육의 실태; 한국-프랑스라는 주제로 열띤 강연을 했다. 그녀는 예술가로서는 현대미술가, 퍼포머였지만, 학자로서는 예술교육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2006년 봄,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런데 대뜸, 영주미술작가회와 프랑스작가와의 교류전이 가능한가라고 물어왔다. 김은주(김은)의 이 도발적인 제안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006'영주미술작가회-프랑스작가교류전'이 전격 개최되었다. 이 불가사의했던 전시는 오히려 개막식에 참석했던 외부 작가들에 의해 지역의 무관심과 작가회의 무능한 홍보력을 질타 받았다. 비록 소문 없던 전시회였지만, 이 기획은 그녀의 가슴 속에 내재된, 고향을 향한 무한한 애정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영주미술작가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더불어 청소년 미술교육을 주제로 강연을 펼치기도 했던 것이다.

 

김은은 1981년 영광여고를 졸업했다. 이어 효성여대(현 대구카톨릭대학교)와 동대학원을 나왔다. 그녀는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다. 유럽에서 그녀는, 통째로 자신을 바꿔버리는데 성공했다. 현대미술가로 변신한 그녀는 1998년 프랑스 노르망디 도빌 해변에서, 2001년 노르망디비에빌 붸빌 밀밭에서, 2002년 노르망디 까브르 해변에서, 2003년 파리 라데팡스2000 타워파노라마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그리고 10년 간의 파리 생활을 마감했다. 귀국 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작가, 교수,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고택보존 코디네이터 등등 촘촘한 스케줄을 엮어가면서도 고향의 일이라면, 작품과 글, 강연 등 요청하는 데로 응해주며 영주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학포(鶴浦)는 김은의 호다. 그녀의 고향집은 이산면 석포리의 천운정(天雲亭) 종가다. 마을 이름을 동포(東浦)라고도 부르니, 마을 앞 번계들에 고고하게 서 있는 한 마리 학이 저절로 그려진다. 그 한 마리 학이 훨훨 날아가 저 남쪽 서망 해안에서 무언의 몸짓을 펼쳤던 것이리라.

 

 

                   세월호 참사 1주기,   Installation + Performance  어둠 속 넋! 한줄기 빛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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