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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미술기행3 석계 김태균

즈음 2015. 11. 3. 17:32

영주미술기행3 김태균

 

영주의 참된 선비, 서예가 석계(石溪) 김태균(金台均) 선생

 

 

몇 해 전 석계 선생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모님이신 이민자 화백께서 다과상을 내어오셨다. 소파가 맞닿은 팔걸이 부분이 편평하고 넓어서 다과상이 앉기에 그만이었다. 뒤늦게 나오신 선생께서 다과상을 보시고는 예가 아니다하시며 얼른 탁자를 치우게 하셨다. 탁자 위에는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선생의 손에 보자기가 들려 있는 게 보였다. 그 시간, 선생께선 손수 서집을 싸고 계셨던 것이다. 늦게 맞아주신 연유였다.

 

제자들이 스승의 서집 상재를 위해 여러 차례 청을 올렸는데도 선생은 번번이 사양을 했다. 후에 자신의 스승이었던 시암(是菴) 배길기(裵吉基, 1917~1999)선생의 서집이 상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에야 비로소 허락을 했다고 한다. 평생 글씨 쓰는 외에 다른 취미를 가져본 적이 없고, 좌우명 또한 안분낙도(安分樂道)이니 겸양과 절제가 몸에 밴 참 선비의 길을 걸어왔다 하겠다.

 

필자의 작업실인 소소제(素宵齊)에서 자형과 차를 나누다가 석계선생에 대한 일화 한 토막을 듣게 되었다. 오래 전, 영주서도회 사무실에서 어떤 제자분이 아무리 해도 안되니 이제 글씨공부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선생께서 글씨 쓴 종이가 한 키를 넘겼는데도 안 되면 그때 그만 두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바로 맹자의 알묘조장(揠苗助長 곡식의 싹을 뽑아 올려 성장을 돕는다는 뜻으로, 서두르다 오히려 해를 본다는 의미)의 비유를 든 것이었다. 경북대 교수를 역임했던 오동섭 교수는 스승의 충고를 충실히 이행하여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글씨를 연습한 화선지가 방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닿았다고 했다. 현재 대구의 중견 서예가로 활약하고 있다.

 

석계 김태균 선생은 1934년 안동 출생으로, 30대 때 대구에서 활동하던 남석 이성조 선생의 소개로 시암 배길기 선생께 사사했으며, 글씨 공부와 더불어 한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호인 삼여재(三餘齋)선생의 진면목을 함축해 보여준다. 삼여란 책을 읽기에 알맞은 세 가지 넉넉한 때를 뜻하는 말로, 곧 겨울과 밤과 비가 올 때를 이른다. 행서와 초서를 특장으로 하지만, 선생에게서 글씨란 의 과정인 것이다. 현재안동서도회영주서도회의 지도를 맡고 있으며, 문하생들은교남서단이란 학술 연구회를 조직하여 이론적 토대와 더불어 전시회도 해마다 개최해 오고 있다.

 

 

 

                                                                                                                                                                                                                  양    1998 

 

  논어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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