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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미술사 - '미술동인 경북선'

즈음 2021. 1. 14. 14:13

찻잔 속의 태풍이었던 7년 간의 기록

 

 

1988, <은풍중학교>에 재직하던 민미협소속 박용진의 주도로 예천, 영주, 상주의 젊은 작가들이 미술동인 경북선이라는 지역연합체를 태동시켰다. 명칭은 김천-영주 간 철도노선에서 자연스럽게 따왔다. 이들은 우리의 지역미술은 어떠한 가치 기준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한국적인 주체성을 지니고 있는가?” “지역주민들과 공감의 폭은 어느 정도인가?” 등의 문제점을 스스로 자문했다. 박용진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앙의 미술은 양적ㆍ물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국제성이라는 유령 같은 흐름에 주체성을 상실하여 뿌리를 잃고 문화적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이 이럴진대 뿌리 있는 자생적 미술은 지방에서 길러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중앙에 대비되는 변두리라는 뜻의 지방이 아니라 주체적인 가치를 지닌 지역미술의 활성화에 경북선 창립의 의미를 두고자 한다.’고 선언하였다. 창립전은 동년 114일부터 7일까지 상주문화원에서, 9일부터 12일까지 예천문화원에서, 14일부터 17일까지 영주시민회관에서 개최했으며, 예천전시 때는 오픈식 후 작가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예천에서는 박용진과 함께 임환재, 권상헌(대창고), 현범구(대창중), 상주에서는 민경호, 이건훈, 이승현(상주중)이, 영주에서는 송재진, 김석현(동산여중), 임춘상, 임부기가 참여했다.

 

 

이듬해 문경의 박한이 합세하면서 경북선상에는 시발역인 김천만 남게 되었다. 2회전 때 상주에서는 지역을 떠난 이건훈 대신 황명옥(아산중)이 참가했다. 순회 전시는 2개 지역에서 개최되었는데 ‘8884일부터 7일까지 상주 서루화랑에서, 9일에서 12일까지 영주시민회관에서 열렸다. 8일 오후3, 영주시민회관 전시실에서 KBS “오후의 교차로방송을 위한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인터뷰 참석자는 박용진, 이승현, 임환재, 김석현, 송재진, 임춘상, 현범구였다. 1990년 제3회전은 첫 참가지역이 된 문경과 예천에서 갖기로 하고 111일부터 3일까지 점촌문화원에서, 5일부터 8일까지 예천 노인복지회관에서 개최했다. 문경에서는 박한이 빠지고 김강록, 광부화가 김용호가 새로 참여했으며, 상주에서는 정두영(모서중)이 합류했다. 영주의 임춘상은 직장을 얻어 지역을 떠났다. 3회전 때부터 비록 흑백이긴 하나 처음으로 페이지가 있는 팜플렛을 제작했다. 그동안 과제발표를 통한 자체 세미나 뿐만 아니라 초보자를 위한 미술감상과 같은 기존의 미술단체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활동들을 시도해 나갔다.

 

 

4회전은 ’9211월에 가서야 개최하게 되었는데, 회의 진로와 관련하여 1년여의 진통기를 겪은 뒤였다. 그러한 속내가 초대의 글에서 읽힌다. “지난 1988년 경북선은 낙후된 지역문화와 답보상태의 지역미술을 걱정하며 첫 전시를 가졌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경북선은 회원 상호 간의 토론과 연구발표를 지속시켜왔고, 4차례에 걸쳐 북부의 몇 개 소도시를 연결하는 순회전시회를 가져왔습니다. 그렇지만 경북선은 스스로에게 창립전에서 밝혔던 지역미술의 주체적 가치 회복과 역할 모색이라는 창립의지에 어느 정도 충실했는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1992년 순회전은 경북선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한 지역주민과 지역미술인이 함께 하는 마당이 되길 바랍니다.....”. 117일자 경향신문에 미술 불모지에 화단개척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크게 게재되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안주하는 자세를 스스로 질타하며 내홍을 헤쳐나갔던 것이다. 전시회는 112일부터 5일까지 상주문화회관에서, 7일부터 10일까지 예천 한일신협 2층 전시실에서 개최됐으며 팜플렛은 엽서형식으로 만들었다. 참여회원은 권상헌, 김석현, 김창길, 김용호, 민경호, 박용진, 송재진, 이승현, 임환재, 정두영, 현범구, 황명옥이며, 김천의 김창길이 참여하면서 경북선이 비로소 완결됐다. 그러나, 참여 작가들이 과연 지역을 대표할만한가, 라는 외부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내부적으로도 자성과 회의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1993년에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역외전을 기획했다.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하면서 지역미술의 주체적 가치회복과 역할 모색에 대한 자문과 반성의 기회를 아우르고자 하였다. 324일에서 30일까지 개최했던 서울 관훈미술관에서의 제5회 전시는 그러나 어떠한 관심도, 반향도 이끌지 내지 못했다. 이 전시를 통해 각자의 역량에 대한 깊은 좌절과 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만 더욱 심화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6회전은 동년 124일부터 7일까지 김천문화회관에서 개최됐다. 참여작가는 권상헌, 김석현, 김용호, 김창길, 민경호, 박용진, 송재진, 이승현, 임환재, 정두영, 최도성, 현범구, 황명옥이었다. 이로써 경북선상의 모든 도시에서 전시회가 열리게 되었다. 1994년 제7회전이 상주와 예천에서 개최됐다. 1124일부터 27일까지 상주문화회관에서, 29일에서 122일까지 예천한일신용협동조합 2층 전시실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 때 그동안 회를 이끌었던 박용진이 물러나고 상주의 정두영이 회장을 맡았다. 6회 전시 맴버 그대로 전시회를 마쳤지만, 그 동안 쌓여왔던 내적 좌절감(매너리즘)을 더 이상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자기반성의 긴 침묵 속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러한 미술동인 경북선의 존재는 7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비록 찻잔 속의 태풍이었을망정 지역연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스스로 도태를 결정했던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고 하겠다.  소백

 

점촌문화원 전시실 내부

 

좌로부터 송재진, 이승현, 박용진, 신상국, 두 사람 건너 임환재

 

마지막 전시회 팜플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