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흐르는 물은 길을 묻지 않네 2

즈음 2020. 4. 25. 08:01

끝순네

 

 

20세기 저물녘에 조우했던 끝순네. 옛이야기가 담겨있던 그릇 하나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주인 아지매의 넉넉한 인심이 그랬고 동네 예인들과도 서슴없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랑방 분위기가 그랬다. 방 한 칸씩 차지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양산박 주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에 젖어 살았다. K는 자신이 쓴 시 끝순네에서 이런 노우트를 덧붙였다. ‘주막에 가 본 적이 없는 자는 주막이 얼마나 낙원인지를 모른다. , 신성한 주막이여!(롱 펠로우의 히페리온중에서)‘ 그랬다. 그 시절 끝순네 막걸리는 우리에게 망우물(忘憂物)이 되어 주었다. 잔 속 동심원 따라 옛 친구들의 얼굴이 얼비치기도 했다. ‘우리라는 숫자가 셈을 버린 지 오래건만 한때는 우리도 넉넉한 무리배였다. 새벽토록 휑했던 끝순네 불빛이 가끔은 둘만의 흐느적거림이었음을 기억한다. 아지매는 무를 깎거나 나물을 다듬으며 둘의 곁에서 무심히 도를 닦았다.

 

어느 날 문득, K를 만나 끝순네로 걸어가다가 떠오른 생각.

 

행인처럼

 

 

 

행인1

행인2

 

너와 나

걷는 동안

문득 깨달은 배역

   

목로 구석방 무대를 꾸며놓고

대본 없는 대사를

한바탕 주고 받네

 

밖은 안보다 더 휘황한 조명

 

너는 택시를 타고 불빛 속으로 뛰어들고

나는 휘적휘적 컴컴한 골목길로 숨어든다

 

행인2

   

 

 


이천 십 삼년, 끝순네 아재가 돌아가셨다. 재담에다 손끝 재주가 나무랄 데 없던 아재였다. 처마 밑을 빙 둘러 풍선덩굴연둣빛 꽃등을 조롱조롱 매달아놓질 않나, 뜨락 한 켠 소인국 산수를 한 컷 삽화마냥 펼쳐놓질 않나. 병치레가 컸던 아재였지만 그의 뒷손이 없었더라면 아지매가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고등어며, 꽁치며 하릴없이 굽다가도, 아지매가 이 방이요, 저 방이요 하면 금새 배달꾼이 되어주던 갸륵한 분이었다. K는 아지매더러 형수라고 불렀으므로 아재가 K에게는 형님이 됐다. K와 함께 문상을 갔다. 아지매의 슬픔이 진실 되고 커보였다. 눈물이 눈에만 고인 것이 아니라는 게 이심전심 다가왔다. 셔터가 내려진 끝순네 앞을 지나칠 때마다 아재가 그려놓은 벽화 흔적에 눈길이 갔다. 기노인의 이웃 하나가 이태백의 시 밖으로 영영 이사를 떠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이 몇 달 만에 아지매가 다시 문을 열어 우리는 현재진행형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 패, 저 패 각자 문턱을 넘어왔어도 어느 샌가 이 방, 저 방 뒤섞여버리던, 수염족들이며, 뻐꾸기들이며 모두들 눈에 띄게 서먹해진 것은 아마도 한 동안의 단절 때문인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수록 우리의 양산박은 더 비밀스레졌으니 골동심리처럼 옹골져만 갔던 것이다. 서른 해 지기 술동무가 보석처럼 숨어있던, 서인도제도의 발견자라며 나를 추켜 세워주던 목로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 여기, 인심을 먹고 마시는 막걸리를 나는 끝탁이라고 불렀다. K의 표현대로 눈 내리는 날이면 마음 맞는 사람과 밤새워 통음하고 싶다던, 뻔질나게 드나들어 문턱을 다 닳게 했다던 끝순네였지만 지금은 우리들 역시 한물간 술꾼들처럼 문턱에 자주 발이 걸린다. 그 흐린 술로부터, 자꾸만 술 나이가 버거워져만 가는 것이다.

   

백거이의 시 問劉十九에 빗대어 K을 꼬드길 때도 으레 주저앉을 곳은 끝순네였다. 언젠가 붓펜으로 시 한 편을 흉내 냈다.

 

問金哲玉

 

末家滿新酒 宜談適其適 晩來天不知 能飮一杯無

 

현토는 하니’, ‘이요’. ‘하나’, ‘리오로서 리듬을 얹어 읽으면 될 것이고, 그 뜻이야 술 한 잔 하자는 수작인 것이다. 굳이 풀이하자면, ‘끝순네에 새 술이 그득 하니, 얼굴 맞닥뜨림이 마땅하지 않은가. 늦게 날씨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술 한 잔 없을 수야 없지 않겠나이다. 원래 편지로 부칠 요량이었으나, 서둘러 글씨를 전송해버린 탓에 곧장 낮술이 되고 말았다. 마침 일요일이었으므로 엉뚱한 집에서 판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