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흐르는 물은 길을 묻지 않네 1

즈음 2020. 4. 23. 22:25

酒戱

 

 


이 글은 어떤 점에서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연락선 같다는 자평을 하게 된다. 스스로 섬이 되었다가 육지가 되었다가 오락가락하며 살아왔음을 실토하게 되는 것이다. 섬이었을 땐 육지로, 어떤 때는 다른 섬으로 나를 옮겨놔 주던 여행이기도 했다.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의 동반자 한 명만을 지목하자면, K형을 꼽을 수밖에 없다. ‘30년 지기 술동무라고 나를 지칭한 것도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저절로 섬이 될 때가 있다

마주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주고받는 말 속에서

파도 소리만 들릴 때가 있다

 

저절로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오늘 하루도 어울려 살았지만

주고받은 말이 많았지만

쓸 말은 이것뿐이다

 

철썩, 처얼썩.

 

    

여행을 떠나기 전 메모와 생각으로 스케줄을 짰고, 떠나면서는 경험과 관심사를 나침반으로 삼았다. 그 스케줄 중 한 꼭지가 타임머신 여행이었던 것이다. 이름 하여 주희. 이번엔 드로잉과 글의 동행을 시도했다. 시서화일체라는 말처럼, 글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글로 읽을 수도 있음을 믿은 것이다.

 

서화 일치라는 개념은 지필묵의 특성 때문에 생겨났다. 후대인인 소동파가 8c 당나라 때 왕유의 그림을 평하면서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라고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글과 그림을 한 몸처럼 여기는 풍토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동양적 사고방식이 삶 속에 누적되어 비록 서양화를 전공했다고는 하나 오랜 시간 나도 모르게 그 믿음에 길들여져 왔다고 하겠다. 이러한 습관이 글까지 쓰게 했던 것이리라.

 

김용준은 근원수필에서 '술이란 세속적인 흥취보다도 도연히 취하는 가운데서 예술에 대한 정열은 더 뜨거워질 수 있고, 기개는 점점 더 호방해져서 부지불식간에 생각지 않은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술에 의해 예술적 소지를 기를 수도 있고 또 감흥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이 말은 내게 해당되는 수사는 아닐 것이나, 그 언저리에서 그 느낌을 공감했던 한 사람으로서 존재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목로에서의 예인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틈틈이 써두었던 글을 덧붙여 마침내 여행의 한 스케줄을 일단락 짓게 됐다. 역시 나는 칠하기보다는 모노톤의 느낌, 그린다는 행위가 좋다. 그리고, 현재의 존재론은 이런 것이다.

 

나는 살아있다

 

어제의 일은 잊어버리고

어제만 남았다

 

내일의 일 알지 못하지만

내일이 남아 있다면,

 

그럼 됐다

나는 살아있다

2015

 

  念  26.4x33.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