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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점의 작품에서 / 송재진의 골목길 / 글 박정수

즈음 2020. 4. 23. 22:44

이 한점의 작품에서 / 송재진의 골목길 / 글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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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 2020. 3. 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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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점의 작품에서 / 송재진의 골목길 / 글 박정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눈에 보이는 사물과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 중에서 무엇을 먼저 중요시 여길까. 물건과 꼭 같이 그려진 그림(정밀묘사)은 왜 예술작품이라 하지 않을까? ‘이거 진짜 같아.’라는 감탄과 ‘어떻게 이렇게 그렸지?’라고 하는 감탄사가 예술작품에 잘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품을 감상할 때 어떤 작품은 느낌으로 보아야 한다하고, 어떤 작품들은 그려진 모양을 보면서 자신의 느낌을 이입시켜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느낌으로 보는 방법은 무엇이며, 모양에 감정을 이입시킨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하늘을 하늘색으로 칠하고 구름을 구름같이 그리는 것은 기술일까 기능일까. 세상의 모든 물건 중에 공장에서 규격으로 생산한 것 말고 규격화된 무엇일 있을까.


기억과 추억이 있는 그림들이 있다. 어른이 되면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던 골목길이 어느 순간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친구들과 골목길을 돌아돌아 삼삼오오 힘겹게 오르던 골목언덕이 몇 걸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어른이 되면 거리가 달라지고 넓이와 폭이 달라지는 기묘한 골목길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송재진의 그림은 어른이 된 사람들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만화경을 닮아있다. 특별하게 무엇을 하지 않음에도 그림을 통해 회상하고 기억하고 추억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정한 지역임에도 같은 역사와 같은 땅을 살아온 우리들에게 보편적 감성과 특별한 감정을 일으킨다.

송재진. 흔적과 기억-관사골1. watercolor on paper. 53x44cm. 2008


그림 <흔적과 기억_관사골>을 보자. 우리나라 어디서나 봄직한 골목풍경이다. 언덕길을 따라 좌우로 나눠진 집들에는 세간이 보인다. 빨래줄과 연탄난로의 굴뚝, 엿바꿔 먹을 수 있는 잡동사니가 있다. 무엇하나 버리지 못하는 부모님 세대의 풍경이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흙이 아니라 시멘트로 잘 발려진 골목길이라는 것뿐이다. 아직도 들릴것만 같은 아이들의 왁자지껄과 어른들의 아이 부르는 소리가 그림 곳곳에 묻어있다.

송재진. 흔적과 기억-새지골. watercolor on paper. 51x36cm. 2009


지금도 우리나라 어느 곳에는 이러한 풍경이 있을지 모르지만 30여년 전 만하더라도 우리나라 여느 곳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흔적과 기억_새지골>이 있다. 건널목 차단기만 땡땡 거리는 무허가 외진 동내의 풍경이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라는 동요가 묻어나는 힘겨운 시절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새지골’의 새지가 송아지의 방언이라 한다면 오랜 시간 전에 소를 키우던 우사(牛舍)에 벽을 치고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동내를 형성한 것으로 유추되는 풍경이다.


화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면서 그 속에 의미를 담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대상을 그림으로 그려낼까. 누군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고자 하나 형체가 없는 바람을 그려낼 방법을 찾지 못한다. 돼지꼬리를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낙엽하나를 그려낸다면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문양일 뿐이다. 살아 있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또 다른 기물을 통해 재현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아주 예쁜 정물을 보고 예쁘다는 사실만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예쁜 사실만을 그려야 온전한 예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화가 송재진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여전히, 골목은 현재진행형이며, 장소진행형이며, 사람진행형이다. 골목들은 언덕을 향하거나 웅덩마을로 스미거나, 뒤안처럼 환하게 숨어있을 따름이다. 얽히고설킨 전선줄이, 골목이, 산동네가 열외의 공간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삶의 현장성을 조형해내는 또 다른 장치처럼. 뒤새, 관사골, 숫골, 신사골, 사례골, 행지골, 보름골, 새지골, 곱작골. . . . 골과 골은 단절되지 않고 실핏줄처럼 이어진다.

나는 지금, 기억의 원형을 더듬으며 골목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 라는 선택의 창이 아니라, 오로지 존재의 창을 통해서. 여전히 바퀴가 닿지 않는, 걸음의 오르막을. 그 막다름의 종점에서 안도하고 있을 어떤 마음을 짐작해보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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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진(Song Jae Jin)

초대개인전 ‘표정을 담다’(포항 아트갤러리 빛, 인사동 경북갤러리) 외 개인전 9회

단체전 및 초대전 300여 회 출품

2016 『흔적과 기억, 송재진의 영주·경북미술 순례기』(나무아트/2016) 출간

한국수채화협회 이사, 경북수채화협회 회장, 갤러리 즈음 관장

송재진. 흔적과 기억-행지골. watercolor on paper. 51x36cm. 2009

송재진. 흔적과 기억-후생시장. mixid media on paper. 49x41.5cm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