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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미술기행12 권무형

즈음 2015. 11. 3. 18:39

영주미술기행12

 

글로벌아티스트 권무형, 명상과 몸의 프로세스

 

 

1996, 권무형은 파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유럽의 미술관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돌아봤던 3년의 세월. 그 시간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절망도 경험했고, 적응력도 키웠다. 마침내 1999, 파리 근교의 이시레물리노 아뜰리에에다 둥지를 틀었다. 다국적 작가들이 46명이나 되었다. 프랑스 정부에서 무상에 가까운 임대조건으로 가난하지만 유망한 작가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던 것. 그 해 2월의 마지막 날 밤 12, 권무형은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머리카락과 면도한 털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프로세스아트의 여정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그로부터 4년 동안이나 그는 이곳에서 절치부심했다.

 

권무형은 자신의 머리카락에다 들레즈의 기관 없는 신체마냥 대체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후, 한 달 동안의 변화되는 사진을 이시레물리노 내 아스널 전시장에다 내걸었다. 한 달간 덧칠한 그림도 함께 전시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프로세스아트의 시작이다. 프로세스아트의 길잡이는 명상이다. 현대 서구의 철학이 동양고전에 닿아있듯이, ‘명상을 통해 동양인으로서 서양 땅에서 본래의 자아를 구도하게 된 것이다. 2010년에는 입체적 형태, ‘을 만들어냈다. 이 미니멀적 작업 역시 명상의 한 과정일 뿐이다. ‘멀티아티스트답게 사진, 비디오, 회화, 입체를 섭렵하더니 드디어 전위예술, 행위예술로까지 확장해나갔다. 이미 시작은 있되 끝은 알 수 없는, ‘시간의 퍼포먼스를 자신의 신체 위에다 진행시키고 있는 그가 아닌가. 머리카락과 수염은 오브제일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업과정이자, 작가의 정신을 담는 기관으로 변모돼 있다.

 

권무형의 해외에서의 활약은 국내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파급력이 컸다. 2008년 세계적 아티스트 왕두가 초대돼 화제가 되었던 터키 이스탄불 국제아트페어에서 주목작가 8인에 이름을 올렸는가 하면, 2007년 주최 측 초대작가로 개인전을 열었던 프랑스 님 국제아트페어(NIM Art Fair)’ 에서는 프랑스 국영 TV 저녁뉴스시간에 그의 작품세계가 특집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핑야오(Pingyao) 국제사진페스티벌’(2009)에 초대되었을 때는 삼성에서 LED모니터 16대를 지원해주었다. 그 동안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브라질, 뉴질랜드 등지에서 2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해오고 있는 권무형은 타고난 노마드적 기질을 발휘하며 글로벌 아티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가고 있다.

 

권무형은 1969년 영주 생이다. 대영고 출신으로 한남대학교 서양화과에 진학했으나 3년 만에 중퇴했다. 극사실 화풍으로 이미 대학3학년 때 전국규모 미술대전에서 초대작가를 획득하고 전업작가를 선언했던 그다. 그러나, 중앙화단의 배타적 벽은 높기만 했다. 그는 대학이라는 출신을 버린데 이어, 중앙화단에 들러리 서는 것을 거부했다.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자신이 걷던 회화의 길마저 버렸다. 화가라는 껍질마저 벗어던지고 말았을 때, 그에게는 예술가라는 칭호가 새롭게 붙여졌다. 1년에 지구를 한 바퀴씩 돌게 하는 튼튼한 날개 또한 부여받았다. 현재, 영주 창진동에 또 하나의 둥지를 만든 작가는 가끔 영주작가들과 막걸리를 나눈다. 선배들의 나이를 무색케 만드는 달관의 경지를 무심코, 엿보게 만들 줄도 안다.

 

PIP PHOTO FESTIVAL CHINA 2009 출품작품

이스탄불 전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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