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미술기행11 조희섭
원초적인 본능, 이브를 그리는 화가 조희섭
“예쁜 색을 내는 물감이야 /리알토 가게에 가면 살 수 있지만, /소묘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려면 /수없는 밤을 지새워서 /영혼의 서랍을 열고 꺼내야 한다네.”
드로잉에 조예를 가진 작가들이 자주 인용하는 시의 주인공은 후기 르네상스를 살았던 이탈리아 작가 자코포 틴토레토(1518~94경)다. 조희섭의 ‘영혼의 서랍’ 속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조희섭의 회화정신의 바탕은 동양화이다. 그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수묵과 채색을 아우른다. 다르게 표현하면, 획(劃)과 회(繪)의 공존이다. 그의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그러나 회(채색)보다는 획(드로잉)이다. 그의 획의 발상은 동양화를 넘어섰고, 그의 정신은 현상을 초월해 있다. 그 획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숱한 이브들의 원초적인 본능이 민낯을 드러낸다. 삶의 희로애락이 여인의 누드를 통해 적나라하게, 가식 없이 표출되는 것이다. ‘97년 겨울, 한 달 동안의 인도여행을 다녀온 작가는 ‘카마수트라’를 표상한 미적 체험을 더욱 적나라한 형상으로 펼쳐내 보였다. 조희섭다운 패기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누드는 단순한 크로키가 아니다. 독립된 인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다. 모티브가 확장되어 테마화 되는 장면들인 것이다.
그의 기질은 열린 공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99년, 롯데월드화랑에서 개최했던 ‘500점의 누드드로잉과 인간탐구’전은 양과 질에서 분출하는 ‘끼’와 욕구를 확인시켜 주었다. 누드크로키 시범 또한 자신감 넘치는 퍼포먼스였다. 1만원을 내면 관람객들도 간단한 스케치 도구를 제공받고 입장하여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다. 그때 글쓴이도 동참했는데, 1시간 동안 2분 단위로 변화되는 포즈를 거침없이, 빈틈없이 잡아내는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사라예보에서 열린 ‘2007 유럽 윈터 페스티발’에 초대되었을 적에도 주어진 벽면에다 휘호 퍼포먼스를 펼쳐 현지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현재까지도 매주 한차례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크로키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그다.
조희섭은 1961년 영주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4기 영주미술학우회 회장을 맡아 70년대 지역학생미술운동의 중심에 서는 등 어릴 적부터 지역에 대한 애착을 보여왔다. 출향작가가 된 뒤에도 영주미술작가회를 이끌기도 했으며, 2003년 소백문화제 때는 서천둔치에 대형 그림 설치전을 주도해 갈채를 받았다. ‘90년 경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현재까지 9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중국, 일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현재 서울 동북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지만, 한때 그 역시 교직을 벗어나 작업 속에 매몰되고 싶어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를 말려달라는 간곡한 당부를 그의 어머니로부터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절제된 욕구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영혼의 서랍‘이 닫힌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미지의 블루칩작가다. 그는 화첩을 손수 묶는다. 이미 40권을 넘겼다. 어떤 이가 말했다. 작가의 누드화집이 발간되기만 한다면, 이는 곧 베스트셀러가 아니겠냐고.
회귀 27cm~54cm 수묵혼합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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