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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미술사-'예인'과 '학인'의 기질을 겸비한 서예가 김동진

즈음 2020. 6. 11. 15:55

 

 

예인과 학인의 기질을 겸비한 서예가 김동진

 

 

공자는 예에서 노니는(遊於藝)’ 생활상을 군자의 한 갈래 이상으로 언급했다.(論語 述而 )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즐기면서 여유로운 인생을 즐기라는 뜻일 게다. 서예가 김동진은 ()’()’으로 정의되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왜 ()’로 불리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작가이다. 서예에 관한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정서는 그러나 도나 법을 더 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단체명부터 영주서도회가 아닌가.

 

김동진은 예인으로서의 와 학인으로서의 를 겸비했다. 휘호 퍼포먼스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 상황을 즐긴다. 그의 조형엔 문법이 녹아있다. 글씨와 문구가 따로 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글씨엔 운치와 여유가 공존한다. 그는 매사에 두리뭉실 넘어가는 법이 없다. 비판적 기질 때문에 까칠하다는 선입견이 들 정도다.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애환이지만, 특히 지역에서 전업작가로서의 서예가란 이 되질 못한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삶은 고단하지만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는 기필코 단호하다. 시인 안상학은 "누항에서, 누실에서, 남루를 걸치고 북풍한설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작가에게 "그에게도 봄날이, 진정한 봄이 머지않아 찾아들 것을 믿는다."고 세 번째 전시회 서문에 썼다. 예술품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는 컬렉션 풍토야말로 도시의 격을 높여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김동진은 내성천을 사랑한다. 내성천이야말로 소백산과 더불어 영주사람들의 오롯한 삶의 근간이자 생명줄이라 믿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문화적 분수령이자 수많은 인문학적 가치를 잉태시킨 존재의 원천으로까지 설정한다.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 경계를 내성천으로 주장하는 것도 사료분석과 실지답사라는 실증적 과정을 거친 결과였다. 그는 혼자만의 답사를 통해 낯설고 낭떠러지가 기다릴 것 같은 샛길을 겁 없이 내달았다. 글쓴이가 그의 손에 이끌려 몇 차례 답사를 편하게 다닌 것도, 그의 걸음들이 미리 밝혀놓은 모험 덕택이었다. ‘운포구곡이 경영되었던 모래강 내성천. 그러나 이제 흘러야 할 내성천이 고인 물이 되려한다. 그 안타까움을 2015', 흐르는 길'전에 담아냈다. 퍼포먼스를 겸한 대형서예작품 속에는 그의 마음이 절절이 구비쳤다.

 

김동진은 1964년 봉화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영주에서 자랐다. 영주고 시절 미술부를 노크했지만, 중학교 때 입문했던 글씨가 그림보다 좋았다. 고등학교 시절 묵선회를 만들어 학생문화 속에 서예라는 분야를 접목시켰다. ‘묵선회는 영주미술학우회(1986년 창립)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 1980년에 창립됐으나 지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학생동아리가 됐다. 입대 전 글쓴이와 영주예술인회를 함께 구상하기도 했던, 오랜 지기기도 한 서예가 김동진. 우리나라 최초로 원광대학교에 서예과가 만들어지자 김동진은 늦깎이 입시생이 되어 글쓴이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1990, 마침내 영주 최초의 학사 서예인으로 거듭났. 학과 동문이기도 한 부인(김이삼)을 만나 귀향한 이후 안동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를 졸업하며 필문을 겸비한 서예가로서 더 한 층 업그래이드 됐다. 그는 대담하고 파격적인 서풍을 구사하지만, 삼어재 김태균 선생을 필생의 스승으로 받든다. 그의 선비기질은 스승의 그림자로부터 나왔다.

 

과정(果丁), 듬밭, 삼어당(三於堂), 백양자(白陽子), 즉지자(則止子) 등의 호를 쓰는 김동진은 2009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를 득하고 그 해 영주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듬해엔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2012년에는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세 번의 개인전을 이어갔다. 끼와 파격이 현대적으로 변용되고, 회화적 스케일로 펼쳐놓은 대형 작품 앞에서 과정만의 독특한 서예관을 음미해 볼 수 있다. 대학시절 서예과 학회지 '묵주' 창간호 편집장을 역임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팜플렛 디자인 능력 또한 탁월하다. , 산문, 향토사학 등 문필가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재능도 뛰어나 아무리 창고 같던 공간도 그의 감각과 먹향만 스미면 예술적 공간으로 거듭난다. 뿐만 아니라 전각의 솜씨 또한 한 경지를 이룬다. 전국휘호대회 초대작가,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이기도 한 과정의 글씨 앞에 서면, 글씨가 왜 예술인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될 것이다.  2016 소백

 

 

得魚忘筌 득어망전 64x51cm 종이에 먹

 

2015 '물, 흐르는 길' 전 출품작(영주문화예술회관 철쭉갤러리)

 

 

과정 김동진 서예전에 부쳐

 

 

과정 김동진과의 인연은 얕은 것 같으면서도 깊고, 뜸한 것 같으면서도 살갑다. 지역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친구 중의 하나다. 마침내 금년, 과정은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로 거듭났다. 그의 서예세계는 좁은 지역서단에서보다는 국전과 같은 중앙서단에서 주목받고 있다.

 

나는 과정의 글씨를 여러 점 소장하고 있다. 그 중 화실을 써준 소소제(素宵齊) 글씨는 화실의 품위를 격상시켜주기에 손색이 없다. 나 역시 물만을 고집하는 작업을 하기에 이러한 붓글씨 제호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물이 흘러가는 듯한 죽계구곡(竹溪九谷)글씨는 우리집 거실에 걸려있다. 이 글씨는 주인이 따로 있다는 듯 자연스레 나의 소유가 되었다. 나는 죽계를 여러 점 그렸는데, 그 한 점 한 점이 다만 일각에 불과했지만 이 글씨는 아홉 구비의 죽계를 한꺼번에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글씨 속에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과정은 다재다능하다. 문학적 재능은 물론 디자인과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그의 창의성은 미더스의 손 같다. 아무리 창고 같던 공간도 그의 감각과 먹향만 스미면 예술적 공간으로 변하고 만다. 하지만 지역에서의 그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는 것 같다. 작년, 지역신문에 기고했던 과정의 글 세모단상(歲暮斷想)에서처럼 세상만사가 세옹지마, 인내하는 시간만큼 앞날에 서광이 비쳐들 날도 머지않았다.

 

금년 우리지역에 가을을 알릴 첫 소식은 아마 과정의 서예전시회가 될 것이다. 먹향 그윽한 전시장에 가면, 분명 거기에서 가을의 전령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글씨가 왜 예술인가에 대해서도 그 의문이 해소되리라 믿는다.

 

宋宰鎭(화가) 2009.9월 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