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se

대폿집 추억

즈음 2012. 6. 14. 09:12

대폿집 추억

 

지금은 사라지고 없거나 또는 현재진행형인 목로들. 20대 적부터 지금까지 일명 대폿집 구석방에서 마음 맞는 친구와 예술과 인생을 논하며 세월을 낚던, 하마 추억이 되어버린 기억 몇 편.

 

1

뒷새마을 영암교 곁엔 동그란 눈알 같던 부엉이집이 있었습니다. 닭곱창 안주가 별미였습니다. 한 냄비에 오백 원, 천 원 하던 시절입니다. 값없던 청춘들이 가끔씩 둘러앉았습니다. 그 시절의 전초였던 시인과 언어, 고전과 철학이 냄비 속을 들락거리던 숟가락마냥 부딪쳤습니다. 모두들 사적 미래는 내팽개쳐 둔 것 같았습니다. 밥도 아니고, 노선도 아니었지만 시대의 곁불을 쬐듯, 눈알만 동그래지던 부엉이들 같았습니다.

 

풍기바람 덜거덕 미닫이문을 두드리면, 빼꼼 내다보던 주모는 방문을 쿵, 힘주어 닫았습니다. 누군가 담배를 부르면, 방 안의 훈기가 우리들 곁에 보태지곤 했습니다. 눈이 풀린 부엉이들이 돌아갈 집은 도망 중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땐 우연히 맞닥뜨릴 때까지 걸었습니다.

 

여름날에도 가끔 부엉이집을 찾았습니다. 마당 한 켠 네모난 젓갈통마다 닭내장이 그득했습니다. 파리 떼가 엔진소리를 내며 비행을 해댔습니다. 비린내에 오줌줄기도 바빠졌지만, 돌아와 앉으면 냄비 속 곱창은 태연하기만 했습니다. 닭내장 같던 우리들도 잊혀지고만 시한부 맛처럼 레테의 강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2

젊은 날 한때는 구 역전 통에서 오이와 풋고추로 막걸리를 마시며 살았습니다. 아삭아삭 씹어 먹던 홍도식당입니다. 바지랑대 끝에 내려앉은 잠자리 날개 위에 얹혀있던 시절입니다. 새벽의 모가지를 마음껏 비틀며 말의 폭죽을 즐기던 날엔 아지매는 잠 속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아까운 말의 빛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습니다. 쏟아낸 말들을 증거할 녹음기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는 쥐들의 지혜였을 따름입니다. 다시는 재회가 어려울 것만 같던 험악했던 어제도 이슬이 마르듯 싱싱한 잎사귀로 되살아나던, 들풀 같던 시간들이었습니다.

 

3

끝순네는 변함없는 안주로 탁배기를 10년 넘도록 마셔댄 집입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요. 서른 해 지기 술동무가 보석처럼 숨어있던, 서인도제도의 발견자라며 나를 추켜 세워주던 집입니다. 여기, 인심을 안주 삼는 막걸리를 나는 끝탁이라고 부릅니다. 동무의 표현대로 눈 내리는 날이면 마음 맞는 사람과 밤새워 통음하고 싶다던, 뻔질나게 드나들어 문턱을 다 닳게 했다던 끝순네였지만 지금은 우리들 역시 한물간 술꾼들처럼 문턱에 자주 발이 걸립니다. 그 흐린 술로부터, 자꾸만 술나이가 버거워집니다.

 

20세기의 저물녘에 찾아간 끝순네는 우리의 옛날이 담겨있던 그릇 하나를 되찾은 기분이었습니다. 20대 시절, 구 역전 거리의 홍도식당이 오버랩 되어 옵니다. 주인 아지매는 잠들고 입심은 등등해져서 새벽의 모가지를 마구 비틀어대던 그 한때. 막걸리의 사발 위로 옛 친구들의 얼굴들이 얼비쳐옵니다. 돈이 돌 적엔 두부찌게안주가 든든해 입심은 더욱 더 단련되어 갔었지요. 끝순네 역시 찌개가 주된 안주메뉴입니다. 그때는 ‘우리’라는 숫자가 넉넉했지만, 지금은 ‘우리’라는 단어가 쓸쓸합니다. 막걸리와 찌개 한 냄비면 훌륭한 저녁 겸 술상이 되었고, 찌개를 다시 데울 때에도 인심만은 졸지 않았습니다. 늦도록 휑한 불빛이 가끔은 둘만의 흐느적거림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아지매는 무를 깎거나 나물을 다듬으며 둘의 곁에서 무심히 도를 닦았습니다.

 

4

125식당. ‘이리오시오’라는 뜻이랍니다. 술동무의 표현대로 80년대 우리들 양산박 주점 홍도를 닮은 집입니다. 오랜만에 발걸음을 했던 어느 날, 우피무침 안주접시만 보고도 맛을 알아차린 적이 있습니다. 욕쟁이 주모의 부재 때문인지는 몰라도, 맛은 보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할멈의 손맛이 부재하다는 것은 이백이 탄식했던 술 잘 빚던 기노인의 부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홍어회와 막걸리를 홍탁이라 하듯 우피무침을 안주삼는 탁배기를 피탁이라고 불렀습니다. 잊혀졌던 먹거리 하나를 125식당에서 되찾은 것은 행운이었지요. 주객이 전도된 듯 막걸리는 매운맛을 무마시키기 위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그 맛은 LP레코드판의 트랙을 도는 바늘처럼 입안을 기스냈지만, 한편으론 아날로그적 맛의 낭만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처럼 맵고 아린 그리움이었습니다.

 

125식당의 고인이 된 주인할멈이 우연히 화제에 오른 날, 서각 형이 자신의 일화 한 토막을 들려주었습니다. 변순사라는 친구와 우피무침 안주를 시켜놓고 각 1병씩만 마시자고 약속부터 했다나요. 이제는 건강을 생각할 나이도 됐고 하니 지금부터는 더 마시자고 하는 사람이 개다! 그러나 소주병은 밑이 새는 듯 했고, 금세 서로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게 되었다지요. 잠시 적막감이 흘렀을까, 멍멍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오더랍니다. 변순사의 입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번에는 꽁치 안주를 시켜선 술잔을 들 때마다 멍멍, 멍멍하며 마셨답니다. 파장을 앞두고 자취를 했던 변순사가 남은 꽁치 1마리는 내일 아침반찬을 하리라며 주인할멈한테 싸달라고 했답니다. 주인할멈 왈, ‘개 줄라꼬요?’

 

5

절주,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봅니다. 여전히 바쁜 입입니다. 들숨 쉬듯 한 잔 들이키고, 날숨 쉬듯 내뱉는 말이 그러합니다. 별을 마시면 별빛이, 꽃을 마시면 꽃향기가, 사람을 마시면 입냄새만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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