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se

휴천동 선각마애불상

즈음 2012. 3. 28. 12:23

 

 

바위의 문신 휴천동 선각마애불상

 

 

서천을 사이로 가흥동마애삼존불상과 엇마주한 구릉 암벽에 약 78cm 크기의 선각마애불상(문화재자료 제504호)이 숨어있다. 관심을 끌만한 것이 못돼서인지 찾아가는 길도 잘 나타나있지 않고 주변 환경도 어수선한 편이지만, 도중에 만나게 되는 관수대(觀水臺)라 새겨 놓은 바위가 눈길을 끈다. 15세기 조선의 문인화가 강희안1)이 그린 “고사관수도2)”라는 그림이 자연스레 이끌려진다. 관수(觀水)란 물을 보며 마음을 씻는다는 뜻. 1961년 대수해 이전처럼 이곳이 강의 한 쪽 기슭이었다면 고사를 흉내내듯 바위에 엎드려 마음을 씻어보는 여유를 부려봄 직도 하겠다.

 

 

잘나거나 못나거나 불상의 제작 동기는 신심에 따른 것이지, 세속적인 예술미는 당사자의 관심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마애불의 조성이 활발했던 고려조와는 달리 조선시대엔 불상의 조성이 급격히 줄어든다. 대신 장승이나 선돌, 남근석 ㆍ 여근석 등 토착신앙이나 민속적인 조형물로 대체되는 현상이 일반화 된다. 이를 반영하듯 불상조각의 미적인 힘도 국가차원의 종교이념으로부터 밀려나며 쇠퇴의 기미가 뚜렷해지는 것이다.

  

 

선각이라는 조건의 바위그림들은 입체면서도 회화적인 특징이 있다. 휴천동마애불은 그런 점에서 암각화와 같은 회화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불상은 3.5m 높이의 바위 상부에 선각되어 있는데 두상부는 주변을 파서 양감이 뚜렷한 돋을새김했고, 어깨 아래로는 두상부의 높이에서 오목새김으로 처리했다. 대좌와 광배는 생략되어 있으며 머리의 육계도 보이지 않는다. 법의 또한 몇 줄의 선으로 처리된 통견이며 수인은 시무외ㆍ 여원인3)이다. 마을의 황씨 성을 가진 부자가 후손을 얻기 위해 조성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1) 강희안(姜希顔 1417-1465) 조선 초의 대표적 사대부화가.

2) 高士觀水圖(23.4x15.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 施無畏與願印은 모든 중생의 두려움과 고난을 없애고, 모든 소원을 들어주어 부처님의 자비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여래와 보살이 모두 취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수인으로 통인(通印)이라고도 한다.



 


'pro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주미협, 25년의 발자취  (0) 2015.11.30
대폿집 추억  (0) 201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