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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미협, 25년의 발자취

즈음 2015. 11. 30. 15:06

영주미협, 25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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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으로만 본다면, 영주의 미협사는 1973년에 결성된 영주미술협회를 떠올리게 된다. 70년대는 주로 중등교사들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미술행사가 개최되던 시기였으며, 향토화단의 태동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60년대 후반 영광고에 근무했던 임대일(전 경북미협지회장, 작고)을 중심으로 박수석(명호중), 김호순(영광여중), 김관(영주중), 유정희(영주여고) 등이 ·봉지구미술교사협의회를 조직하고 1970년 경다방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던 것이 성인단체의 효시라고 하겠다. 임대일 회장의 이직 이후 1973영주미협’(회장 오상목, 영주종고)이 태동되었으며 삼화다방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 때 창립 맴버로 참여했던 작가들 중 지역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작가가 바로 김종한(대영중)이다.    

 

근접지역인 안동에서는 1975년에 안동미술협회를 설립하고, 79년 지부인준을 받게 되었으니 미협이라는 명칭으로만 따지면 영주가 앞섰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 째 전시회가 78년에 가서야 개최되는 등 미약한 활동력으로 말미암아 그 의의는 반감되고 말았다. 2회전 참여작가로는 홍종환(회장. 영주고), 김인선(영주중), 김종한(대영중), 심길남(영광고), 박정보, 이영일(영광여고), 전난희, 정일(중앙고) 등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그 해 학생사생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81년 세 번째로 개최했던 전시회가 마지막인데, 김종한(회장), 김송란, 김예순(풍기중), 김인선(영주여중), 김충호(영광중), 김호순(영광여중), 박정서(영주중), 송강(영주여고), 심길남(영광고), 이영일(영광여고), 전성진(중앙고), 조주복, 최인자, 홍종환(영주고) 등이 참여했다. 이 모임이 계속 이어졌다면 현재의 미협의 전신으로 연결될 수도 있었겠지만, 1987영주·영풍·봉화중등미협’ 을 창립함으로써 교단중심의 방향을 고수하게 되었다. 이 단체 역시 전 회원이 미협회원으로서 활동성 중복을 이유로 1996년 발전적 해체를 선언(회장 김경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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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지역미술사에서 90년대는 지역화단의 형성기에 속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미협지부(`90)와 예총지부(`93)가 설립된 일일 것이다. 당시, 미협지부 유치는 지역미술발전의 초석이 될 거라는 기대감 속에 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추진되어 온 일이기도 했다미협 결성에 대해 애착을 보였던 것은 열악한 지역 상황에 대한 최선의 대응전략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198711, 필자는 안동대학교 정영진 교수로부터 미협 창립에 관한 조언을 구했으며, 그 해 12월 지부등록을 위한 구비서류 일체와 안동지부장이었던 이동진 교수의 인준 추천서까지 확보했다. 당시는 근접지부 및 예총지부 추천이 필수적이었다. 구비 서류는 창립총회 회의록을 비롯, 무려 10종류나 되었다.1) 회원 수도 회칙에 따라 자격기준에 맞는 15명 이상을 확보해야 했으며, 근접지부의 인적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 198863, 88다방에서 심길남(영광고), 김충호(영광중), 전성진(중앙고), 김종한(대영중), 황재일(영광중), 필자 등이 영주미협 창립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는 그 동안의 성과를 보고하였으며, 초대 지부장에 김종한, 간사에 필자가 지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모임조차 가지지 못할 정도로 지지부진하게 되자 필자는 그 동안 수집했던 일체의 서류와 정보를 김종한 지부장에게 송부하고 간사 직을 사퇴했다. 그 이후 미협 창립은 없던 일이 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듬 해 김종길 회원을 후임 간사로 삼아 1990321, 마침내 미협지부 인준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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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 629, 영주작가 13명과 안동미협에서 지원받은 김인선, 김예순 등 15명이 시민회관에서 뜻 깊은 창립전을 개최하였다. 이는 경주, 안동, 포항에 이은 경북에서의 네 번째 지부창립으로 구미지부와 함께 결정되었다. 영주지역 창립회원으로는 김종한(지부장), 김종길(사무국장), 심길남, 박성락, 최영두, 김석현, 김만용, 이영길, 남경호, 김해성, 김승호, 김경준, 그리고 필자 등이었다. 창립전 때 이수창, 김인수, 정영진, 조광래, 박상환, 이병국, 김종범, 유철호, 임서규 등 안동미협 회원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해 주었다. 74, 전시회 종료일에는 조희수 한국미협 부이사장이 지부를 방문해 격려했다. 8월에는 시민그림모임 행사와 더불어 순흥에서 여름미술학교를 개최했다. 동년 10, 5회 소백문화제 초대전으로 두 번째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1월에는 제17회 경북미술대전 수상작품순회전을 주관하였다. 동년 12, 김종한 지부장의 첫 개인전이 시민회관에서 개최됐다.  1991년부터는 영주JC 주최 사생대회 심사를 위촉받아 이후 계속 사업으로 수행하게 됐다작품전은 첫 해처럼 1년에 2회씩 이어갔으며, 안동지부의 김인선, 김예순은 4회까지 출품하였다. 3회전은 새롭게 제공된 대구은행 2층에서 개최했다동년, 신입회원으로 황재일, 이동곤(이상 한국화 분과)이 입회하였다. 김종한 지부장은 이렇듯 2년 간의 임기 동안 초창기 미협에 대한 초석을 놓고 물러났다.  

  

19922대 지부장에 최영두가 추대되고, 사무국장에 필자가 임명되었다. 6, 5회 회원전에 이어 안동대학교 이수창 교수를 초청, ‘영주시민을 위한 미술강연회를 개최했다. 신입회원으로는 서양화 분과에 서은식, 조소분과에 서경일이 입회했다. 동년 12월에는 향토미술인연합송년전을 개최했다. 한편, 1985년 창립하여 지역에 한국화 바람을 일으켰던 소백한화회 소속 전성진에 대한 협회 영입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일탈을 즐기는 작가적 기질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그의 가입을 미뤄지게 했다 이 해에 고무적이었던 일은 경북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이 시작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1994, 3대 지부장에 심길남, 사무국장에 김경준이 새 집행부를 구성했다. 동년 5, ‘13회 도민체전기념 영주문화예술인연합전을 개최했다. 1995미술의 해를 맞아 안동-영주지부 교류전을 개최하였고, 이산초등학교에서 여름미술학교를 운영했다. 회원 개인전으로 동년 7, ‘송재진 수채화전과 영주문화원 초대 김종한 · 전성진 2인전이 시민회관에서 개최됐다  

 

1996년에는 제4대 김만용 지부장이 취임하면서 함께 하는 미술마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김만용의 의욕적인 리더십은 연임으로 이어져 2000년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신입회원들도 대거 영입하였는데, 한국화 분과에 전성진, 길인성, 김경미, 석구원, 양화 분과에 강병모, 박병국, 공예분과에 손호익 등이 입회하였다. 한편 전근을 가게 된 조각분과의 서경일과 양화분과의 김해성은 탈퇴하였다. 동년 2, 지부 별 7명씩(김만용, 심길남, 김경준, 서은식, 이영길, 이동곤, 송재진)참여한 예총 총회(우리식당)에서 회장으로 박하식씨(문인협회) 연임되었고, 필자는 예총 사무국장을 맡게 되었다. 이에 발맞춰 미협 서류 및 자료 등을 예총사무실로 이송하여 관리토록 했다. 8, 거제시 예총방문단과의 자매결연식 때는 박근칠 문협회장과 함께 김만용 지부장이 동석했다. 동년 7월에는,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2층 연합치과에서 갤러리 공간을 개설했는데 그것을 기념하여 향리주제 소품전을 개최하였으며, 향후 지역 미술인들을 위한 상설 갤러리로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8월에는 2회 여름미술학교를 이틀간에 걸쳐 시민회관 전시실을 빌려 운영했다. 이때 제작한 그릇들은 김경준 회원의 작업실 가마에서 구워냈다. 1997년 서양화분과에 조병훈이 입회했다1998년부터는 지부장 임기가 중앙미협의 규정에 맞춘 3년으로 조정되었고 5대 지부장을 연임하게 되었다. 이 해 서예분과를 설치, 송택동, 김동진을 입회시켰다. 동년 10월에는 1회 영주사랑학생미술실기대회를 구성공원에서 개최했다. 소백한화회 소속으로 ’9312, 영주여객 건물에 대형벽화인 슈퍼그래픽을 주관했던 김만용은 1999, 시민회관 전시실 계단 벽면에다 벽화 예향의 노래를 제작했다. 2000년 미협 창립 10주년을 맞은 제17회 회원전에는 안동미협의 류윤형, 김인선, 김예순을 초대했다. 이 해에 조각분과에 김진식, 서예분과에 박기진, 송윤환이 입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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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6대 지부장에 전성진이 추대되었다. 동년 6, 영주예총에서 주최한 13도어울마당학생실기대회를 첫 사업으로 주관했다. 소백산을 중심으로 남편에 위치한 영주시와 북편에 위치한 충북의 단양군, 강원도의 영월군 등과 함께 했던 행사였는데 아쉽게도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역행사인 영주사랑학생미술실기대회4회로 뻗어나갔다. 신입회원으로 영주한전지점장을 퇴임한 뒤 지역에 남아 작가의 길을 모색하던 최광희가 서양화분과 회원으로 입회했다. 2003년 제23회 회원전 때는 팜플렛 대신 탁상용 달력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제1회 삼도소백어울마당 시상식에서 전성진 미협회장의 인사말                                 

 

2004년 제7대 지부장에 박성락이 추대되었다. 다시 많은 신입회원들을 받아들였다. 서예분과에 장호중, 서선화, 양화분과에 강준, 이섭열, 민경수 등이 입회했다. 그 결과 12월에 개최되었던 제25회 정기전 때는 출품회원이 30명을 넘어서는 기록(34)을 세우기도 했다. 9월에는 영주사랑학생실기대회6회로 마무리 하고, 영주선비촌 개촌을 기념한 1회 학생실기대회를 개최했다. 20052회부터는 선비정신 함양을 위한 도내학생그리기대회로 격상시켰으며 개최 장소도 순흥의 영주선비촌으로 정했다. 동년, 신입회원으로 서양화분과에 유순란, 손순희가 입회했다. 27회 정기전 때부터 서예분과에서 문인화를 분리시켜 분과 수가 하나 더 늘어났다. 동년 10월에는 남서울 대학교 대학원생 초청 유리 시연회를 시민회관전시실과 광장에서 실시하여 호평을 받았다. 20066, 영주시로부터 사업비 2천만원을 지원받아 제33회 경북미술대전과 서예대전을 유치하여 영주국민체육센터에서 전람회를 개최했다.2) 실내체육관에 임시부스를 꾸미는데 든 칸막이(부스) 수만 451개였으며 마침 부지부장을 맡고 있던 필자가 영주제일고에 근무할 때여서 그 중 100여개를 제일고에서 빌려 쓰기도 했다. 신입회원으로 서양화분과에 김종숙, 서예분과에 권승세, 공예분과에 김수재가 입회했다.  

 

                                                              영주국민체육센터에서 개최된 제33회 경북미술대전

                                                              영주국민체육센터에서 개최된 제33회 경북서예대전

 

2007년 제8대 지부장에 김승호가 선출됐다. 2000년대에 들어 중앙미협에 대한 사회적 지탄 속에서도 직선제가 대세가 되어 도지회(간접선거)나 심지어 지부까지도 선거바람이 몰아치던 때였다. 입후보자는 송윤환과 김승호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다음 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2004년 영주예총 회장 선거 때 극심했던 내홍과 후유증을 지켜보기도 했지만, 이미 경선의 분위기는 되돌릴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동년 11, 영주시청 민원실의 문화공간 조성 방침에 따라 작품 두 점(김종한)이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게 된 시청 열린갤러리임대사업의 시발점이 되었다. 2008년부터는 시청 민원실에 2달에 2~3점씩 작품을 걸게 되었으며 최광희, 송윤환, 이섭열 등이 참여했다. 2009년에 가서야 정식으로 임대차계약서가 작성되었고, 명칭도 향토작가초대전으로 불리게 됐다. 민경수, 유순란, 박성락, 이섭열(사무국장) 등이 그 해 전시에 참여했다. 200710월에는 풍기인삼축제조직위원회로부터 전국미술실기대회를 요청받고 풍기인삼축제장에서 개최하였으며, 이후 2009년까지 3회를 실시했다. 신입회원으로는 박숙희, 손정아, 원근용, 유순란, 유영희, 홍문희, 이석희(이상 서양화분과) 등이 대거 입회하였다. 2008년 신입회원으로 원종석(서예), 장정순(서양화), 정선(공예)이 입회했으며 2009년에는 이승주(서양화)가 입회했다. 20096회 선비정신함양경북학생그리기대회는 순흥을 벗어나 서천변과 제민루에서 개최되었다. 2009년 봉화지부가 창립되었는데 영주지부의 2대 지부장을 맡았던 최영두가 초대지부장을 맡음으로써 이적을 하게 됐다.

 

 

 

                                          2007년 영주미협정기전 개막식. 김승호 지부장과 김주영 시장 등이 커팅식

                           

                               2007 풍기인삼그리기전국실기대회 및 체험행사

                           

 

    

                                 2009년 제민루와 서천 둔치에서 개최된 제6회 영주선비정신함양경북학생그리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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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9대 지부장에 필자가 선출되었다. 역시 김종길 회원과의 경선을 통해서였다. 필자는 다르게, 그러나 함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3년 뒤인 2013년에는 10대 회장에 추대되어 김만용 지부장에 이어 두번째로 연임을 하게 되었다. 이후는 연혁으로 대신한다.

 

 

 

1) 지부등록신청서 구비 서류 : 1. 근접지부 및 예총지부 추천서1/ 2. 창립총회 회의록1(6하 원칙에 의거)/ 3. 지부정관 1/ 4. 임원명단 1/ 5. 회원명단 1(성명, 주소, 생년월일,   전공, 직장)/ 6. 임원취임승락서(지부장)/ 7. 수지예산서/ 8. 주요사업계획서/ 9. 지부인장 및 대표자 인감대장/ 10. 지부소재지 약도

자격 : 4년제 졸업 2년이상 활동, 2년제 졸업 4년이상 활동, 무졸 10년 이상 활동. 15인 이상

추천서 : 명칭 한국미술협회 영주지부/ 위 협회와 회원은 영주지방 문화발전에 기여되는 바 크므로 인준하여 주시기 바라오며 이에 추천합니다. 1987.12.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안동지부 지부장 이동진

2) 미술대전 출품 현황 : 한국화 124, 서양화 166, 조각 32, 공예 9, 디자인 9, 건축 15, 판화 3점 등 총 358

서예대전 출품 현황 : 한글 41, 한문 296, 문인화 153, 전각 5점 서각 65점 등 총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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