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news

두번째 영호남미술교류전에 부쳐

즈음 2016. 10. 11. 10:55

두 번째 영·호남 미술교류전에 부쳐

 

송재진 경북수채화협회 회장

 

 

양 지역 간 교류와 소통에 관한 한, 이미 문화예술계에서는 지역감정이란 벽을 허물어뜨린 지 오랜 일이다. 동서지역 간 문화예술분야의 소통의 궤적은 그만큼 진지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들의 유대감과 동질감은 그 어느 분야보다도 깊고 탄탄했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현실이지만, 동과 서는 조장된 현실이었던 것이다.

 

미술 분야의 경우, 경북도내 여러 미협지부에서 전남 지역과의 교류전을 개최해오고 있으며, 국내교류는 영·호남 간의 교류전이 근간을 이루어 왔다. 단발성으로 끝난 경우도 없진 않지만, 매년 주고받는 식으로 연륜을 쌓아 나오고 있는 지역도 여러 군데다. 이 시대는 로컬과 글로벌이 한 접점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을 거치지 않고도 세계와 직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서화합이라는 말이 골동품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기도 하다.

 

경북과 전남은 한국화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가들과 미술사적 주요 맥락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한시에서의 대우처럼 음미되는 부분도 많다. 19469, 지방 최초의 사학(私學)이자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民立大學)<조선대학교>가 광주에 설립되었을 때, 경주에서는 남한 최초로 <경주예술학교>가 몇 달 앞선 4월에 문을 열었다. <조선대학교>가 현재까지 남도 제일의 사학으로 남도예술을 이끌어오고 있다면, 영남예술의 밑거름 역할을 했던 <경주예술학교>는 한국동란이라는 격동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역사가 된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남미술의 여명기에 김홍식(1897-1966)이 있었다면 경북에는 황술조(19041939)가 있었다. 두 분 다 영·호남에서 가장 일찍 일본유학을 다녀왔으며, 민족의식이 남달랐다는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다. 여수 출신인 김홍식은 호남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오지호보다 3년 일찍 동경미술학교를 졸업(1928)했으며, 경주 출신인 황술조 역시 영남양화의 비조라 할 손일봉보다 4년 앞선 1930년에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김홍식이 맞돕회’ , ‘여수농민회등을 통해 민족개화와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면, 황술조 역시 1934년 임용련(任用璉) 등과 함께 민족적 색채를 띤목일회(牧日會)’를 창립하여 활동하였고, 1936년 경주로 귀향해서는 경주고적보존회의 상임고문을 맡는 등 신라유적에 심취하다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분들이 한국화단에서 한동안 소외되어 있었던 것은, 화단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은둔했다는 점과, 작품 또한 과작이었던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경상도의 손일봉(1906~1985)’, 전라도의 오지호(1905~1982)’라는 유행어의 주인공인 두 분 역시 한국화단에 각인된 대가들이다. 오지호는 화순 출신으로 서울의 <휘문고보>를 다닐 때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1925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 유학, 1928년에 녹향회를 결성했으며, 해방 후에는 조선미술가동맹중앙집행위원, 미술평론 담당 등의 역할을 맡으며 활약했다. 1948년부터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화단에 큰 맥을 형성했으며 한국 인상주의 1세대 작가로 각인되었다. 손일봉은 경주출생으로 1928<경성사범>을 졸업하고 1934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 <우에노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선전에서 입선1, 특선3회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이미 유학 전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해방이 되어서야 귀국함으로써 친일로 매도되는 등 한 때 중앙화단으로부터 배척을 받기도 했으나 영남 일원에서 후학양성에 매진하며 작업을 병행했다. 1971년 수도여사대 교수로 초빙됨으로써 중앙화단으로 진출하였고, 이후 타계하기 전까지의 15년 동안 불같은 화업으로 그 명성을 단숨에 회복했다.

 

수채화분야에서도 호남이 배동신(1920~2008)이라는 걸출한 화가를 배출했다면, 영남에서는 박기태(1927~2013)라고 하는 필력화풍의 대가가 한국수채화 화단의 계보를 이었다. 두 분은 한국수채화작가회창립회원이기도 하면서, 전상수와 함께 3인 수채화전을 개최(1983 신세계화랑)하는 등 생전의 교류도 친밀했다고 보아진다. 미술가 이경성은 배동신의 출현에 대해 중앙집권적인 예술문화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며, 배동신의 출현으로 한국수채화의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수채화의 전통은 영남출신인 이인성, 손일봉, 이경희 등에 의해 주도되어왔지만, 호남에서도 수채화의 전통과 뿌리가 배동신에 의해 비로소 확립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박기태는 손일봉의 직계 제자로 <경주예술학교> 출신이다. 학맥이나 인맥이 전무했던 서울에서 오로지 수채화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었던 외골수 작가였다. 1967년부터 1981년까지 수채화작품으로 국전에서 열 차례의 입선과 두 차례의 특선(1973, 1976)을 했다. 처음 국전에 출품했을 때 유일한 수채화였다는 점과, 유화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크기의 종이 그림으로 두 번이나 특선에 올랐다는 것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기도 했다.

 

예술분야만 놓고 경북과 전남을 비교해 본다면, 관심과 투자 면에서 격차가 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적인 풍토성도 한 원인일 수도 있지만, 경북지역의 경직성은 선비문화전통우대풍토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15년까지의 공·사립 미술관 설립 현황만 보더라도 전남은 22개소, 경북은 9개소로 격차가 엄연하다. 다만, 2014년 서울 인사동에 <경북갤러리>를 개관한 것이 경북지역작가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주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전시관을 운영하는 지방자체단체 중에서는 전북광주에 이은 세 번째로, ‘한국미협경북도지회에 운영을 위탁했다는 점이 색다르다. 20162, 경북도청이 안동과 예천의 접경 지역인 검마산 아래로 이전을 완료함으로써 경북의 새 시대가 열렸다. 이에 발맞추어 도립미술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전남에서는 도립미술관 설립을 광양으로 확정했으며, 경북미술인들은 도청소재지에 도립미술관이 건립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경북도에는 문화예술재단이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전남문화예술재단남도예술은행사업은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이 사업은 생활기반이 열악한 전남지역 미술인들의 창작지원과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이 사업이 정착되면서 전남지역으로 되돌아온 작가들과 전업작가들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한국미술협회 소속 회원으로 전남에 거주하는 미술인 수가 첫 시행연도인 2006년에 498명이던 것이 2012년에는 619명으로 6년 사이 24.3%나 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역작가 180여 명의 한국화, 서양화, 문인화, 서예 작품 등을 엄선해 3305점을 구입했으며, 매주 진도 <운림산방>에서 열리는 토요그림경매를 통해 소장 작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수익금은 다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데 쓴다고 한다. 경북도와 의회에서도 2016, 지역작가 작품을 공개 매입하여 신청사에 전시를 하고 있다.

 

양 지역은 독도와 가거도라는, 국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상징적인 섬을 각기 보유하고 있다. 독도는 우리나라 최동단에 있으며 가거도는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다. 가거도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섬이란 뜻에서 가거도(可居島)’라 불리지만, 독도는 온 국민들의 마음이 주민인 섬이다. 주민등록상의 주민은 독도가 30, 가거도는 497명이다. 가거도는 대흑산도에서 남서쪽으로 70, 목포에서 145떨어진 외딴섬이지만, 독도 역시 울릉도에서 87.4, 육지인 포항에서는 무려 258.3나 떨어져 있다. 모두가 애틋한 감성을 샘솟게 해주는 소중한 국토의 막내들이다. 2003,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도발을 감행하는 바람에 1998년부터 이어오던 경북도와의 교류가 폐지됐다. 그들의 헛된 망상은 오히려 국내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독도 사랑법을 깨우치게 해주었다.

 

양 도간의 상생교류라는 대의 아래 경주에서 첫 걸음을 내딛은 영·호남 미술교류전이 이제 두 번째를 맞게 되었다. 작년에 개최했던 장소는 처음 문을 열었던 <화백컨벤션센터>였으며, 두 번째 장소 역시 새로 건립된 신도청 청사 내 동락관이라는 사실에서 새롭게 태어난 양 도간의 미술교류전의 의미와도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관장은 나무의 뿌리는 이념, 줄기는 정치나 경제, 맺힌 꽃은 문화·예술이라고 했다. 이 행사 역시 정치, 행정 분야에서부터 출발했지만, 진정한 결실은 예술분야의 몫임을 상기시켜 준다. 양 도의 미술인들이 진정성을 바탕으로 공동의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공유해 나가기를 기대마지 않는다.


'art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예끼마을 개장  (0) 2017.12.06
회화 6인전  (0) 2017.01.17
경북수채화협회 야외스케치 행사  (0) 2016.08.07
울진 워터피아축제 토크쇼  (0) 2016.08.07
2016 경북미술대통합전  (0) 201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