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워터칼라페스티벌의 연혁 고찰
남부워터칼라페스티벌은 2005년,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대규모 수채화제전이다. 남부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수도권을 배제한 남부지역 수채화작가들이 도모했던 예술의 지역분권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엔 부산과 호남 간 동서화합 차원으로 기획되었지만, 그 의미가 확장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안착되었다. 광역시나 도 단위 지역 간 순회교류라는 처음의 의도 역시 수정될 수밖에 없었는데, 도 지역의 사정이 광역시와는 다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경북의 경우엔 도 단위 단체가 결성되지 못한 채 북부권엔 영남수채화작가회(1998)가 김천엔 김천수채화협회(1989), 포항엔 포항수채화협회(2004)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경북을 대표하여 영남수채화작가회(1998)가 2회전부터 참여하게 되었지만, 첫 전시는 포항수채화협회(2004)만 참여했다. 경남의 경우엔 작가 위주로 운영되는 경남수채화협회(1983)에 비해 아마추어작가들이 중심이 된 김해수채화협회(2011, 정원조)나 진주수채화협회(2013, 김흥섭) 등이 지역 단위의 독자적인 단체를 결성하여 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첫 개최지였던 부산은 2002년, 2004년 아시아수채화대전을 성공리에 개최했던 전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수채화 축제를 추진할 수 있는 자신감을 확보했다. 이러한 자신감이 남부지역 전체를 의기투합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시켰다고 하겠다. 그 기저엔 영ㆍ호남 교류와 화합이라는 명분과 더불어 수도권에 대한 반발심 또한 작용했음은 전술한 바와 같다. 개최지 부산에서 62명, 대구에서 32명, 광주ㆍ전남에서 21명, 경남에서 7명, 울산에서 16명, 전북에서 23명, 제주에서 14명, 포항에서 7명 등 영ㆍ호남 8개 지역 183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매머드급 전람회는 이렇게 해서 막을 올렸다. 성공의 이면에는 2005년 부산APEC정상회의 개최를 앞둔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부산광역시와 시교육청, 예총 및 미협, 지역방송과 신문사 등이 후원을 했으며, 많은 지역의 기업체들이 협찬했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산에서의 대성공에 고무되어 2006년 제2회전은 개최지가 대구로 결정됐다. 운영위원장 김재오의 발의로 5월27일 대구 수성관광호텔 커피숍에서 운영위원회가 개최됐다. 부산에서 초대전시를 이끌었던 권용훈은 이 자리에서 부산의 성공사례를 전수했다. 주 내용은 부산문화회관으로부터 2주에 걸친 장기전시 허가를 얻어냈고(규정은 1주일),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성사됐으며, 입장료에 대한 수입도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메이저 언론사 등 다양한 기관의 후원도 줄을 이었다는 것. 그야말로 흑자를 낸 본보기라 할만 했다. 2회전부터 참여지역도 기존 지역 외에 경북(영남수채화작가회), 김천(김천수채화협회), 진주(여성수채화회) 등이 추가되었다. 광역단체가 아닌 기초단체가 참여하게 된 것은 지역별로 독립적인 단체가 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북지역은 여러 지역이 모여 있는 영남수채화작가회가 대표성을 획득했다. 216명이라는 참여회원 수가 말해주듯, 산술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2회전은 순탄치 못했다. 준비 과정에서 울산협회와의 마찰로 인해 울산지역의 보이콧 선언이 있었는가 하면, 광주지역에도 불참자가 많아 광주ㆍ전북을 한데 묶어 참여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러한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에서만 78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등 대구수채화화단의 내구력이 외우를 극복하게 했다. 이경희(대구), 전호(서울), 이수창(안동) 등 대회초대작가 외에 대구미협 소속 중견작가들과 각 지역별로도 초대작가들을 적절히 안배한 것이 눈에 띄었다. 더불어 한국수채화협회 소속 수도권 회원 10여명도 초대됐다.
제3회전은 전주(운영위원장 소훈)에서 개최되었다. 참여 인원은 197명이었다. 눈여겨 볼 일은 수도권 초대작가들이 전체 초대작가 26명 중 22명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참여 지역도 광역단체 단위로 묶었으며, 이로 인해 독자적으로 참여해오던 기존의 기초단체들이 이탈하게 되었다. 경북의 경우 김천지역 작가들 일부가 '경북'이라는 우산 아래 동참해 주었지만, 포항지역은 불참을 선언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호남지역으로 바톤이 넘어오면서 비로소 남부워터칼라페스티벌이 본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왔다. 제4회전은 개최지 신청이 복수가 되면서 오픈행사 뒤풀이 만찬시간에 급히 운영위원회가 소집되어 중재가 이루어졌다. 울산이 먼저 신청을 했지만, 창원이 양보를 받아냈다. 1회전 때는 부산APEC정상회의 개최가, 2회전 때는 2011세계육상대회 유치기원이 모토였지만 창원에서는 '2008년 람사총회'가 어필됐다.
2008년 5월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제4회전(운영위원장 이경태)이 개최됐다. 210명의 참여인원 중 경남에서만 83명이 참여하는 등 내적 집중력이 돋보인 대회였다. 특이한 점은 대회장 이상남에 더해 한국수채화협회 이사장 전호를 명예대회장으로 위촉하여 수도권(서울ㆍ경기)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20명의 작가를 이끌고 진주시가 참여함으로써 다시 기초단체의 독자적인 참여가 재개됐다. 그러나 개최지 이외의 지역 참여도가 낮은 점은 극복해야할 현안이 되었다. 이에 부산운영위원 정인성은 행사참여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위해 지역별로 개선될 집행부와 관계없는 상임운영위원제를 제안하여 가결시켰다. 다음 년도 개최지가 울산으로 결정되면서 대구지역과의 화해와 중재 노력도 경주되었다.
제5회전은 대회장 나원찬과 운영위원장 정현숙의 주도로 2009년 9월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됐다. 개최지인 울산에서 31명이 참여하는 등 모두 169명이 참여했다. 초대작가는 22명으로 수도권에서 6명, 제주 1명, 부산 2명, 대구 3명, 광주 1명, 전북 4명, 경북 2명, 경남 2명, 울산 1명 등으로 골고루 안배됐다. 광주ㆍ전남지역의 불참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과의 관계 회복을 이룬 점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운영위원회의에서는 제주를 차기 개최지로 선정했으며, 제주행사 이후 다시 처음부터 로테이션을 하자는 안이 부산의 정인성 위원으로부터 나왔다. 또 광주지역의 불참에 대해서는 회원의 자격이 전공자로 제한되어 회원 수가 적은 것이 불참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전주의 소훈 위원이 대신 해명했다.
제6회전은 도 예산지원까지 받아내며 제주특별자치도문화진흥본부 초대전으로 2010년 9월에 개최됐다. 대회장 김원구와 운영위원장 양근석은 장소성을 극복하기 위해 개최공문 뿐만 아니라 수시로 운영위원들과 통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244명이라는 역대 최대 참여수와 함께 광주ㆍ전남과 경북의 경주ㆍ포항 등이 다시 합류하게 됐다. 제주에서만 39명이나 출품할 정도로 수채화 저변도 넓어졌다. 전시장은 도문예회관 전관 외에도 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산갤러리까지 아울렀다. 초대작가들은 수도권과 더불어 고르게 안배했으며, 충북(제천)작가가 처음으로 초대됐다. 무엇보다 그동안 적극적이지 못했던 광주에서 차기 개최를 신청한 것이 최대 성과였다. 휴일을 끼워놓은 일정 때문에 각 지역마다 독자적으로 하루, 이틀 더 제주에 머무르게 된 것은 제주만의 강점이라고 하겠다.
제7회전은 2011년 12월에 가서야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개최되었다. 운영위원장 김효삼은 전시일정과 장소의 섭외가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그만큼 대형미술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는 지역이 광주였다. 광주ㆍ전남지역 작가 61명 등 총198명이 출품했으며, 새로 김해지역이 추가됐다. 초대부문은 대회초대작가라는 명목으로만 6명을 선정했다. 페스티벌의 의미대로 아마추어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으나, 반대로 기존 작가들의 외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음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으나, 가장 시급히 풀어야할 현안으로 떠올랐다. 초대작가로 선정 받지 못하면 아마추어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회비를 내고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차기 개최지로 경북 안동이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부산수채화협회가 첫 주관했던 남부워터칼라페스티벌의 연륜이 더해져 감에 따라 양적 팽창에만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의 기류도 이즈음 나타나기 시작했다. 10회를 넘어가면서는 400명을 넘나드는 숫자로 인해 외형적 부풀림이 극에 달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정작 기성작가들은 불참 또는 외면당하고 몇몇 지도급 작가들의 문하생들이나 아마추어작가들로만 채워지는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지역분권이라는 본연의 취지 역시 무색해졌지만 그만큼 중앙과 수평적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라 하겠다. 비록 아마추어작가들의 등용문처럼 변질된 면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채화라는 단일 쟝르로서 이만한 규모의 축제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기초단체 단위의 개최지에선 예술분야 최대 이슈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점은 여전히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하겠다.